생원일기

마로니에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14. 19:19

집으로 가는데 애잔한 노래가 발목을 잡는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다

차를 세우고 노래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축제를 준비하는 홍보차량에서 나는 소리다

오늘 부터 유성에서는 이팝나무 축제가 열린다

항상 이맘때 이팝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기후변화로 너무 일찍 꽃이 피어서 지금은 지고 있다

대신 마로니에 꽃이 이팝나무 보다 더 예쁘게 피어나서 거리를 환하게 밝힌다

유성에는 갑천주변으로 마로니에 가로수가 심어진 도로가 있다

마로니에 가로수는 꽃이 필때가 제일 예쁘다

여름철에 무성히 자란 나뭇잎도 이국적이라 좋다

그러나 밤 같이 생긴 열매는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밤처럼 생긴 마로니에 열매를 주워 먹고 입술이 부르트고 알레르기가 생겨 고생했다고 한다

마로니에는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면서 같이 유명세를 탄 나무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로 시작되는 저음의 박건 목소리에 옛사랑을 그리는 애닯은 가사는 가슴을 저미며 추억에 잠기기 안성 맞춤인 노래이다

마로니에 꽃이 활짝 핀 거리에서 그 노래를 들으니 이름 조차 잊고 살았던 많은 친구들의 얼굴과 추억이 새삼스럽다  

마로니에 노래가 히트하면서 서울의 유명대학 캠퍼스에 있던 지금의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도 함께 유명해 졌다

최고의 지성이 다니는 학교 교정에 있는 나무라고 하니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마로니에는 아름답고 특별한 나무로 각인될 수 밖에 없었다

마로니에라는 발음은 외국어이지만 유려하고 부르기 쉬워서 가수이름도 되고, 상호나 상표로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공원이나 수목원에 가면 마로니에를 찾아 보았지만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인터넷 검색기능이 다양해져서 어느날 우연히 마로니에를 찾아보니 우리나라 칠엽수의 불어명이 마로니에 였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가 알려지기 전에는 많이 심지 않던 나무인데 요즘에는 어느 공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나무가 되었다

같은 이름도 노랫말이나 외국어로 말하면 느낌이나 이미지가 다르다

앙드레 김이라는 디자이너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청문회에 불려 가서 본명을 김봉남이라고 밝혔을때 모든 국민들이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사람을  "순자"와 같이 촌스러운 이름과  "연아" 처럼 세련된 이름으로 이름표를 붙여서 누가 더 예쁜지 조사를 했더니 세련된 이름인 연아가 월등히 많았다고 한다

앙드레 김과 김봉남이 같은 사람이고 순자와 연아도 같은 사람인데 이름 하나만  바꾸어도 다른 느낌의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마로니에도 그래서 특별한 나무로 대접을 받는것 같다

박건이 "지금도 칠엽수가 피고 있겠지....." 라고 노래를 불렀으면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까 궁금해 지는 부분이다

마로니에에 대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이 또 하나 있다

세계사 책에서 읽은 프랑스 시민혁명 이야기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얻기 위해서 무능하고 사치스러운 루이16세 왕조를 무너뜨릴때 모자에 마로니에 잎을 꽂아 시민군 표시를 달고 싸웠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시민군 모자에 꽂은 마로니에 나뭇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다

마로니에 나뭇잎은 손바닥을 편것과 같이 이파리 일곱개가 손가락 처럼 펼쳐진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칠엽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무능한 정권을 촛불을 밝혀 바꾸었듯이 프랑스에서도 무능한 왕조를 마로니에 잎으로 바꾼것이라고 생각하니 마로니에 잎을 바라보는 마음이 새삼스럽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는 반복해서 거리를 울린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칠엽수 보다는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것이 낭만적이다

마로니에를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는데 마누라가 집에 안가고 뭐 하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마로니에 나무 아래서 좋은 노래를 들으니 옛날 우리 둘이 데이트할 때 생각이 난다고 마누라에게 거짓말을 했다

마누라가 그때 그렇게 좋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 거짓말로 고개만 끄덕였다

추억도 떠나간 사람도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는 밥주는 사람이 상전이다


마로니에 가로수

마로니에 꽃과 잎

유럽의 공원과 도로에  제일 많은 나무가 마로니에다

나무도 오래 되어서 대부분 거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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