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잡초

재정이 할아버지 2017. 6. 22. 05:12




우리 마을에 명물이 하나 생겼다

집 앞에 있는 전봇대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다

몇해 전에 전봇대 틈새로 새싹이 하나 올라왔다

잡초로 알고 뽑아내려고 했는데 포도나무이었다

전봇대를 박은 자리에서 새싹이 자란것이 신기해서 그냥 두었다

시멘트 틈을 뚫고 올라온 생명력이 가상하기도 하고 얼마나 사는지 두고 보자는 오만함도 있었다

그렇게 몇해가 흘렀다

지난해에는 포도나무 줄기가 엄지 손가락만큼 굵어졌고 넝쿨도 무성히 자라서 인도에 터널을 만들었다

포도도 몇송이 열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물도 주고, 가지도 잘라주고, 비료도 주고, 넝쿨이 잘 벋어 나가도록 집도 지어주었다

올해는 포도나무 터널에 수십송이 포도가 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구경하는 명물이 되었다

세상에는 잡초도 없고 쓰레기도 없다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잡초는 없다"의 저자인 윤구병인데 대학교 철학교수의 직과 삶을 버리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윤교수의 말대로 포도나무를 잡초라고 생각하고 뽑아버렸다면 동네 명물은 생기지 않았다

흙 한줌 없는 시멘트에 뿌리를 내리고도 포도송이를 키워가는 포도나무에서 많은것을 배운다

만약에 내가 포도를 따먹기 위해서 전봇대 밑에 포도나무를 심었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사람이라고 욕을 먹고 나무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들판에 나는 잡초도 씨를 받아서 밭에 재배하려고 하면 병이 나고 잘 자라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자연에서 온것이기 때문에 천성대로 살게 내버려 두면 잘 자라는데 내가 필요해서 키우려고 하면 내뜻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찔레는 아무리 잘 키워도 찔레꽃이 피고 장미는 내버려 두어도 장미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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