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효자손

재정이 할아버지 2017. 6. 27. 05:56

내 옆에는 항상 효자손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때 소풍가서 선물로 사온 것이다

효자손은 가려운 곳을 긁는 도구이지만 아들이 말썽을 피울때 회초리로 썼던 물건이다

제가 사온 선물로 제가 맞으니 아이러니이다 

주말농장에 다녀오면 여기저기 벌레에 물리고 풀잎에 긁혀서 가려운 곳이 생긴다

보이는 곳이 가려우면 손으로 긁으면 되지만 이상하게 등쪽이 가려울 때가 많다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니 효자손으로 벅벅 긁으면 아주 시원하다

예전에는 마누라에게 긁어달라고 했지만 수시로 가려우니 차라리 효자손을 옆에 두고 긁는것이 편하다

긁어서 부스럼을 낸다고 한다

가려워서 긁은 자리는 영락없이 표가 난다

속옷 등자리에 피가 묻기도 하고 손과 팔에는 덧나서 피딱지가 붙어있기도 한다

가려우면 약을 바르라고 마누라가 연고제를 내옆에 가져다 놓았지만 급한대로 긁는것이 쉽고 편해서 잘 안쓴다

선거는 가려운 곳을 찾아서 잘 긁어주는 사람이 이긴다

선거공약이나 후보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세상 구석구석 가려운 곳을 잘도 찾아내고 긁어 준다

시원하고, 통쾌하고, 후련하다

공약으로 세상을 긁어주는 선거가 끝나면 긁은 자리에 덧이 나기 시작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법이다

먹는 법, 입는 법, 잠자는 법, 모두 법이다

法이라는 한자를 풀어서 보면 물이 가는 길이라고 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단순한 물질이다

오랫동안 물이 흐르며 길을 만든 강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길이다

물길이 불편하다고 해서 물길을 막고, 물길을 돌려 놓으면 잘 흐르던 강물 다른 곳에서 여기 저기 탈이 생긴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몰라서 물을 막지 않았고 돌릴줄 몰라서 돌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물길을 막아서 편해진 사람에는 효자손도 물길이 막혀서 탈이 생긴 사람에게는 회초리다

권력이 바뀌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개혁과 혁신이다

나라든 회사든 개혁과 혁신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고삐를 잡아 당기는 구실이 된다

개혁과 혁신의 말뜻은 모두 가죽을 벗긴다는 말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뜻이다

흉칙한 풀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스스로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은 개혁과 혁신의 모범사례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것이 혁신이다

안정된 속도로 가는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좌회전을 해도 우회전을 해도 자세가 바르고 편안하다

과속으로 달리는 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급격히 우회전을 하면 몸은 좌측으로 쏠리게 되고 몹시 불안해 진다

과속은 빨리 가고 싶고 잘 해보고 싶어서 힘이 들어간 행동이다

프로야구 감독은 신입선수가 들어오면 첫마디가 힘을 빼라고 한다고 한다

프로선수가 되어서 잘 하고 싶은 의욕이 앞서 동작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경기가 평소대로 되지 않고 실수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가려운데 안 긁고 배겨날 장사는 없다

덧나고 부스럼이 생기는 부작용도 당연한 것이다

효자손은 가려운데만 긁고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로 쓰면 안된다    

요즈음은 이상하게 여러나라 지도자들이 효자손을 회초리로 쓴다

몇일 후 우리나라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데 효자손으로 서로 등을 긁어줄까 칼 싸움을 할까 그것이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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