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명당

재정이 할아버지 2017. 7. 14. 06:03

 

 

내가 은퇴를 하고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가족묘를 만드는 일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친가이든 처가이든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쓸수있는 가족묘를 만든다는 것이 나의 구상이었다

그래서 고향에 12기의 납골묘를 만들고 계절이 바뀔때 마다 찾아가서 공들이고 가꾸었다

잔디를 입히고 꽃나무를 심고 잡초를 뽑았다

5년이 지난 이제서야 아담한 가족묘의 모습이 자리를 잡았다

묘 아래의 밭에는 언제나 과일이 열리도록 여러가지 과일나무를 심어서 성묘를 오는 사람들 주전부리도 준비했다

세상에 태어난 기념으로 공원같은 가족묘지를 만들어 남기고 간다는 생각이었다   

 

얼마전에 대통령 선거 출마자가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하여 조상의 묘를 명당으로 이장한다고 하여 풍수지리가 화제가 되었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알고보면 황당하다

이론은 주관적이고 지관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이다

나는 풍수지리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명당의 조건에서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이라는 점은 맞다고 본다

나는 강원도 영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쇠락한 탄광촌이었던 영월은 우리나라 오지중의 오지인 산골이었지만 경치 좋고, 인심 좋고, 역사적 유물도 풍부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영월에는 장릉이라는 단종의 왕릉이 있다

집 가까이 장릉이 있어서 아내와 자주 놀러간 곳이다

어린 단종이 유배되어 청령포에서 죽임을 당하고 동강에 버려지자 영월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노루가 쉬고있던 자리에 묻어 생긴 왕릉이다

장릉을 보면서 산짐승이 잠자는 자리가 명당이라는 것을 배웠다

가족묘 자리는 아내와 이른봄에 냉이를 캐러가서 발견한 자리다

이른 봄이라 눈과 얼음이 덜 녹았는데 가족묘 자리는 얼음이 모두 녹아서 냉이를 캘 수 있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산짐승이 쉬던 자리도 보였다

그래서 20년 전에 땅 주인을 찾아가 부르는 대로 돈을 주고 비싸게 산 땅이다

 

나는 운명론자다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달 전 수자원공사에서 이 땅을 상수도 정수지 용도로 수용한다는 통보가 왔다

내가 땅 주인이지만 국가의 수용명령은 거부할 수 없다

토지의 보상가는 협상 대상이지만 수용자체는 불복이 허락되지 않는다

몇달 후면 이곳은 공사장으로 변해서 내가 가꾼 가족묘는 사진으로만 남게 된다

전체 500평 밭 중에서 양지바르고 전망이 좋은 200평이 수용되고 골짜기 그늘진 땅 300평만 남는다

남는 300평 잔여지는 수자원공사에 수용요구를 하였다

골치아픈 법리싸움을 해야 한다

공익사업으로 수용되므로 보상은 해준다고 하지만 돈으로 보상이 되지 않는 상실감이 크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몇해 사이에 장묘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묘지 자체가 필요없다는 생각이 크게 늘어난다

묘지를 만들 땅도 없고, 땅이 있어도 너무 비싸고, 만들어서 자식 고생시킬 필요도 없다는 이유다

며칠전 TV에서 시골 노인이 한말이 정곡을 찌른다

죽어서는 명당도 소용없고 이웃집 잘 만나서 화목하게 사는 집터가 명당이라는 말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돈을 땅에 묻지 말고 세상구경이나 많이 하라는 팔자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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