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수학과 산수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0. 31. 05:37

우리집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쓰지를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가계부 통장을 만드는것 이었다

모든 수입과 지출을 한 통장으로 하고 통장에 기록된 입출금 내역이 가계부를 대신한다

마누라는 명문여고 출신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영어와 수학은 지금도 중학생을 가르치고도 넘치는 실력파다

나는 책읽기를 싫어하고 영어도 수학도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깡통이다

그런데 마누라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보니 학교공부는 시험에만 유용하고 세상사는 것은 별개다 

실생활이나 여행을 다닐때 위급사황에서 영어구사는 내가 월등하다

복잡한 돈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도 내가 더 명확하다

나는 눈으로 읽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권 이상의 책을 귀로 읽는다

마누라가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난해한 문맥이 나오면 나에게 해석을 부탁한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잘 모르는 단어를 전후 문맥을 짚어서 알려주면 거의 대부분 정답이고 해석도 명쾌하다

지금은 로마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시간이 날때마다 그날 읽은 책의 줄거리를 소상히 알려주어 마누라는 눈으로 읽고 나는 귀로 읽어서 두사람이 같이 읽는 셈이 된다

문제는 산수다

수학은 잘하는데 마누라의 산수 실력은 빵점이다

결혼초에 가계부를 쓴다고 매일 매일 지출사항을 노트에 빼곡히 적었다

콩나물을 사고, 두부를 사고, 돼지고기를 산것이 날짜별로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은 되어있다

가계부가 일기를 쓰는 형식이어서 기록의 의미는 있으나 결산은 할 수가 없다

가계부는 일정기간의 수입과 지출 결과가 적자인지 흑자인지를 알아보는 장부다

결산을 할 수 없는 가계부 작성은 스스로 몇달만에 집어 치웠다

지금은 수입과 지출이 증명으로 남아야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얼마전 부터는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가계부로 쓰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그러하듯 타인과의 돈거래는 반드시 기록이 남는 통장으로만 한다

문제는 나와의 돈거래다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서로 돈을 주고 받으며 쓰고 나면 결산을 한다

마누라는 두서없이 구약성서에서 거시기는 시기거를 낳고 시기거는 기거시 낳고 ......그노마를 낳았더라는 식으로 말로 한다

수학선생이 칠판가득 이상한 기호를 써내려가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한시간 내내 떠드는 것과 같이 나는 마누라의 이야기를 듣고도 알아듣지 못해서 짜증이 난다

할 수 없이 다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고  3+2-5+8-5+8 라고 말하는 대로 내가 받아 적는다

받아 적은 것으로 초등학생이 연필심에 침을 뭍혀가면 산수문제를 풀듯 더하고 빼서 11이라는 답을 알려준다

마누라는 그제서야 머릿속이 정리되어 남은 돈을 맞추어 본다

사람마다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다

마누라의 수리개념은 정말로 못말리는 수준이다

고스톱을 칠때 나는 척 보면 아는데 마누라는 밤새도록 뒤적거리기만 하지 점수계산을 못한다 

이론의 수학과 실용의 산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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