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탁구공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 15. 18:06

운동선수 중에서 비운의 선수를 꼽으라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졸라 버드를 꼽는다. 155cm의 키에 38kg의 왜소한 17세 소녀는 3000m와 5000m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였다. 영국계로 외모는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맨발로 달려서 화제를 뿌리고 다니던 선수였다.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 운동화 후원 제의도 거절하고 맨발을 고집하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졸라 버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올림픽 출전이 거부되자 영국으로 귀화해서 어렵게 LA 올림픽에 출전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는 메리 데커라는 라이벌 선수가 있었는데 데커의 세계신기록을 버드가 쥬니어 대회에서 갱신하여 LA 올림픽 최고 관심 경기이고 세기의 대결이라고 해서 이목이 집중되었다.

 

버드는 올림픽에서도 맨발로 출전하였다. 중반까지 중간에서 달리던 데커가 앞서가던 버드를 치고 나가려는 순간 버드의 발에 걸려 데커가 넘어졌다. 부상으로 시합을 포기한 데커가 울부짓자 버드도 심리적 동요로 리듬을 잃어 순위권 밑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후 버드와 데커는 우리들 기억에서 사라진 선수가 되었다

 

내가 졸라 버드를 기억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마누라가 육상선수 출신이고 시집올 때 키와 체중이 버드와 같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는 아니지만초등학교 시절 학교 대표로 달리기 대회에 여러번 출전을 했다고 한다. 시합은 효창운동장에서 했고 맨발 대신 하얀 덧신을 신고 달리기를 했는데 작은 키에도 성적은 좋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체조선수로 뽑혀서 얼마간 훈련을 했는데 체력이 달려서 포기했다고 한다. 운동선수라고 하면 우람한 체격과 무쇠도 부러트리는 힘을 떠올리지만 작은 키에도 재주만 있으면 잘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는 모양이다

 

마누라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체중계에 몸무게를 다는 일이다. 마누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즈음 여자들은 자신의 몸무게가 절대가치인 것 같다.자기만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서 조금만 올라가도 식음을 전폐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다

 

마누라의 체중은 특급 비밀이다. 아무도 저울 눈금을 못 보게 하고 말도 해주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마누라는 체질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다. 밥 먹고, 과자 먹고, 과일 먹고, 빵을 먹어도 시집 올 때 체중에서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온 종일 새앙쥐처럼 무엇이든 갉아 먹으며 사는 타입이다

 

마누라가 시집을 오기 전에 우리 집에 인사를 왔다. 어머니는 마누라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허약해 보여서였다. 엉덩이도 크고, 가슴도 크고, 그런 맏며느릿감을 원했다. 마누라가 두 번째 인사를 왔을 때 어머니는 마누라에게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오라고 시켰다. 마누라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자 어머니는 밥상이라도 들으니 다행이라며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했다.

 

마누라는 허약한 그 체격으로 쌍둥이 까지 낳았다. 우리집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지금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때라 출산일까지도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을 몰랐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삭이 되어서도 워낙 체격이 작으니 배도 유난히 부르다고 생각을 했다. 하마처럼 큰 여자도 하나 낳기 힘들다는 아기를 쌍둥이로 낳았으니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놀랄 일이다

 

나잇살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가 들어 때가 되면 남자는 배가 나오고, 여자는 살이 오른다. 젊어서는 나도 마른 편이었는데 배도 나오고 체중도 많이 나간다.마누라가 체중계에 올라는 횟수가 늘었다. 먹는 것도 조심한다. 겨울이라 활동량이 줄어서 그렇다고 위로를 해도 마누라는 고개를 젓는다

 

마누라는 취미교실에서 탁구를 배운다. 탁구공만 한 여자가 호박만 한 여자를 탁구로 이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을 한다. 육상을 했고, 체조도 배운 기질이라 그런지 탁구를 잘 하는 모양이다. 낮에는 탁구, 밤에는 체조교실에 나가서 운동을 열심히 한다. 다녀오면 어김없이 체중계에 올라간다. 탁구공만 한 우리 마누라도 이러니 여자들은 탁구공 보다 가볍게 살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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