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조류독감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 16. 18:58

마누라와 산책을 다녀왔다

날씨가 풀려 봄기운이 도는 오후라 기분이 상쾌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치킨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치킨을 사달라고 하니 마누라가 펄쩍 뛰며 안 된다고 한다

조류독감이 유행인데 치킨을 먹으면 안 된다고 떼쓰는 아이 끌고 가듯 내 팔을 잡아당긴다

겨울만 되면 유난스럽게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치킨까지 못 먹을 이유는 없는데 마누라가 유별나다


옛날 시골에서는 이른 봄이면 씨 암닭이 포란해서 부화한 병아리들이 마당 한쪽에 삐악거리며 돌아다녔다

병아리는 한여름 복날쯤에 약병아리로 자란다

약병아리는 농사일에 지친 식구들 보양재로 요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써 키운 닭들이 나무 밑에 모여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온 마을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닭에는 치명적인 돌림병인 뉴캐슬 병에 걸린 것이다

누구네 집이라고 할 것도 없이 뉴캐슬 병이 돌면 마을의 모든 닭은 그날로 생을 마감하고 저녁상에 오른다

아이도 한 마리,  어른도 한 마리,  병들어 죽기 직전의 닭을 잡아서 가마솥에 고아 포식을 하는 날이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닭을 기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공장 같은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닭을 사육하니 뉴캐슬 같은 닭 병은 예방을 하는데 근래에는 이름도 생소한 조류독감이 무섭게 번진다

조류독감에 걸리면 수많은 닭들이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집에서 기르던 닭이 병들면 부리나케 잡아서 식구들이라도 포식하는 날이었는데 지금은 잡아서 파는 닭도 안 먹으니 옛날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닭은 조류독감 때문에 못 먹고, 돼지는 구제역 때문에 못 먹고,  생선은 방사능 오염이 무서워서 못 먹으면 무엇을 먹을 거냐고 마누라한데 대들었더니 김치하고 된장국이 건강식이란다 

치킨을 안 사주는 대신 햇딸기가 좋아 보이니 딸기를 사자고 했다

나는 당뇨가 있어서 딸기를 못 먹는다

못 먹는 딸기를 사준다고 해서 화가 나 마누라를 두고 혼자 집으로 왔다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굶어서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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