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바보

재정이 할아버지 2018. 2. 5. 18:38

세상에는 이해하기 힘든 바보도 있다. 약속 시간에 몇 분 늦었다고 고위직을 버린 바보다.

얼마 전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장관이라는 고관이 상원의 질의 답변 시간에 몇 분 늦게 도착한 것이 의원들에게 결례라면서 그 자리에서 사의를 표한 것이다.크게 잘못한 일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예의범절을 중요시 하던 사람이어서 지각 자체가 관료로서 품위를 잃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죽으면 노예나 황제나 모두가 같다고 유언을 한 로마 황제가 있다. 로마제국의 번성기에 수많은 전쟁과 내분을 겪으며 황제의 지위에 올랐으나 인생의 덧없음을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 깨달아 남긴 말이다. 전쟁도 그렇고, 형제와 친구를 음모와 계략으로 죽인 목적이 권력 쟁탈이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고 보니 죽으면 노예나 황제나 모두가 같다는 로마 황제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직장은 엄연한 계급사회이다.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기 위해 뛰어든 직장이지만 기왕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남보다 빨리 승진을 해서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건강한 경쟁은 세상을 발전시키고 생동감 넘치는 사회의 활력소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직장에서의 은퇴는 경쟁이 없는 죽은 사회로 회귀다.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작은 행복은 누구나 공평하고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사람에게는 항용유회(亢龍有悔)를 새겨 두라고 한다. 용이 승천을 하면 하늘에서 조화를 부릴 권력을 누린다. 따듯하고 온화한 날씨도, 비와 바람도 용의 조화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용은 온화한 날씨와 생명의 비를 주지만, 심술궂은 용은 번개를 치고 폭풍우를 뿌려 세상을 황폐화한다. 용도 시간이 되면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용이 세상으로 내려올 때 하늘에서 한 일을 후회하지 말라는 충고가 항용유회다.

 

뉴스를 보면 한때 권력을 누렸던 잡용들이 가끔 포승줄에 묶여 나온다. 가문을 빛내고 가족에게 자랑이었던 화려한 하늘 나들이가 독배가 된 것이다. 개인도 비극이지만 나라도 수치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전직 대통령 자리가 텅 비었다니 부끄러운 역사다. 차라리 영국의 바보처럼 감투가 머리에 맞지 않는다고 팽개치고 나왔으면 구경이라도 마음 편히 할 것인데 그러지도 못해서 지금은 후회를 할 것이 틀림없다.

 

용이 되기는 어렵지만 바보가 되기는 쉽다. 바보들이 많은 나라가 좋은 나라다. 미개했던 고대 왕국도 아닌데 황룡이 죽으니 이무기, 구렁이, 하찮은 도롱뇽 까지 함께 묻어버리는 순장(殉葬)은 보는 것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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