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야담(野談)과 실화(實話)

재정이 할아버지 2018. 5. 12. 07:45

겸손하고 예의 바른청년이 혼인을 하였다

혼례를 마치고 신방에 든 신랑은 신부에게 옆에 누워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허락을 받고 신부 옆에 누운 신랑은 신부에게 손을 잡아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허락을 받고 손을 잡은 신랑은 신부의 몸을 만져봐도 되느냐고 신부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렇게 예의 바른 첫날 밤을 보냈다

첫날 밤뿐만이 아니라 평생 그렇게 부부의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 문신인 고불 맹사성의 일화이다

사관의 기록이 아니고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야담이니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존경받는 청백리 재상 맹사성의 겸손과 예절을 이르는 우스갯소리이다

겸손과 예의가 우스개의 소재가 된 것은 남녀관계라는 것이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지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보통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장에서는 매년 필수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는다

미투의 사회적 이슈로 성폭력 예방 교육도 대폭 강화되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갑자기 야담에서 들은 맹사성의 일화가 떠오른 이유다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와 여성에 대한 배려와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성년자와 여성 보호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라도 성폭력 예방 교육은 꼭 필요하다

  

이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본능으로 타고나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동물은 타고난 대로 표현하면서 살고, 사람은 생각을 해서 절제하며 산다는 것이 다르다

동물은 힘세고 포악한 자가 무리를 지배한다

사람도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지만 물리적 힘을 쓰는 저급 권력과 돈으로 다스리는 중급의 권력, 지식으로 다스리는 고급권력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남자는 지금까지 힘과 돈과 지식을 여성 억압 도구로 움켜쥐고 살았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성 평등은 오래전에 이루어 졌어도 여전히 미투나 성폭력의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근래에 우리 사회를 공분에 빠트린 미투의 본질은 일본원숭이 생태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공원에 사는 원숭이들은 자연에 방사되어 살아가지만, 관리인이 밥을 준다

원숭이들은 사회성 동물이라 무리를 이루고 산다

원숭이 무리에는 힘센 대장 수컷 원숭이가 있다

태어나서부터 수없이 싸우고 경쟁해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수컷이다

대장이 되고 나서도 수시로 도전해 오는 젊은 원숭이들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겨야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대장 원숭이는 무리의 암컷과 어린 원숭이를 지켜주고 관리인이 주는 밥을 나누어 먹이는 역할을 한다

관리인이 밥을 주면 대장 원숭이가 먼저 밥을 먹는다

대장 원숭이가 밥을 먹고 나서 하는 일은 다른 무리나 눈 밖에 난 미운 원숭이가 밥을 못 먹게 감시하는 일이다

무리의 암컷들과 어린 새끼들은 대장의 눈을 피해서 잽싸게 한 움큼씩 밥을 훔쳐 먹는다

대장 원숭이가 밥 앞에서 험상궂게 소리를 지르고, 윽박하면서 권위를 뽐내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암컷 원숭이가 보이면 붙잡아서 교미를 한다

교미를 마친 암컷 원숭이는  대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준다

이렇게 해서 대장 원숭이가 밥을 지키며 암컷과 교미하는 횟수가 하루에 15회 정도나 된다고 한다 

TV 뉴스로 접한 권력형 미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성폭력 예방 교육 내용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고전적 성범죄에 그치지 않고 대상과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이성과 동성도 불문한다

좋아서 바라보는 것도 상대가 수치심을 느끼면 성폭력이다

예쁘다거나 몸매가 잘 생겼다는 칭찬도 때에 따라서는 성폭력이다

어른이 아이들이 귀엽다고 얼굴이나 엉덩이를 쓰다듬는 것도 성폭력이다

좋아하는 친구의 손을 허락 없이 잡으면 그것도 성폭력이다  

미투의 가해자가 되어 패가망신하거나 성폭력범으로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성과 관련된 것은 보지도, 말하지도, 만지지도 말고 살아야 한다

젊은 연인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므로 손을 잡고, 뽀뽀하고, 끌어안기 전에 상대방에게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

연애를 하려면 언제 손을 잡을 것인가, 어떻게 뽀뽀를 할 것인가 두 사람이 합의해서 증인을 세우고 계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맹사성의 야담은 연애 계약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내가 몇 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짓궂은 농담을 해서 사무실에서 쫓겨났을 것이고, 술자리에서는 음담패설로 좌중을 웃긴 죄로 전자발찌를 찼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은퇴한 백수이니 마누라에게만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잠자리에 들면서 마누라에게 옆에 누워서 자도 되느냐고 젊잖게 물었다

마누라는 자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시큰둥이다

손을 잡고 자도 되느냐고 또 물었다

선잠에서 깬 마누라가 왜 자꾸 헛소리를 지껄여 잠을 못 자게 하느냐고 신경질을 낸다

자꾸 헛소리를 하려면 나가서 혼자 자라고 내쫓았다

그날 밤부터 나는 소파에서 손자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

미투에서 비롯된 성폭력 예방 교육이 나 까지 거세를 시켜버렸다

맹사성의 일화는 야담이지만 나는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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