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재정이 할아버지 2019. 1. 15. 06:45

마누라가 유성장에 가는 이유는 덤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 필요해서 가기도 하지만 흥정과 덤이 있는 장날 분위기를 즐기러 간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필요한 물건은 더 많다

좋은 물건을 팔고 깨끗이 포장해서 사용도 편하다

마트에서 장보는 방법은 물건과 가격표를 보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만 하면 된다

   

마누라가 유성장에서 민물새우를 샀다

한겨울 별미인 민물새우는 겨울철 장날에 장터에서만 살 수 있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에도 장터를 지키는 상인들은  에스키모처럼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눈만 나오는 모자를 쓰고 길바닥에 앉아 좌판을 벌였다

장날에 맞추어 저수지에서 잡아 온 민물새우는 엄동설한에도 팔딱팔딱 뛰며 신선도를 몸으로 보여준다

민물새우 가격을 물어보고 새우의 상태도 살피면서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마누라는 마음에 드는 새우장사 할머니에게 갔다

민물새우는 귀한 만큼 비싸다

커피잔만 한 종지에 담긴 것이 만원이다

반종지 오천 원어치 새우를 사면서 마누라는 할머니에게 덤을 달라고 떼를 쓴다

한 줌도 안되는 새우를 사면서 어떻게 덤을 주느냐고 할머니가 정색이다

달라거니 안된다거니 하다가 지는 척 할머니가 새우 몇 마리를 봉지에 넣어주며 흥정이 끝났다

마누라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좋아하며 장바구니에 민물새우를 담았다

 

값에 해당하는 물건 위에 더 얹어주는 물건을 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덤이 후한 나라도 없다

채마밭에서 기른 야채를 파는 할머니에게 시금치를 사면 시들고 부러져서 상품성이 없는 시금치 한 웅큼을 덤으로 준다

팔 수는 없어도 고르고 가리면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덤을 얹는 것이다

마트에서도 할인을 해주고 카드로 결제하면 포인트가 적립되는 덤이 있기는 해도 시장에서 감자 한 개, 시금치 한 줌을 얹어 주는 덤이 덤답다


몇 해 전 냉장고를 샀다

고가의 물건을 사려니 쉽게 결정을 못 하고 머뭇대는 마누라에게 매장 영업사원은 여러 가지 할인 혜택을 제시했다

그래도 선뜻 결정을 못 하자 이번에는 사은품이라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유리그릇 세트를 보여 주었다

사은품 덤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누라는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은 기계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덤이어서 덤덤하지만 유행하는 유리그릇 세트를 준다고 하니 금방 마음이 흔들렸다 


물건을 살 때 나는 항상 뒷전이다

필요한 물건이 보이면 바로 계산을 하고 들고나오기 때문이다

회원카드를 만들면 포인트 적립이 되고 사은품을 준다고 해도 귀찮다고 뿌리친다

마누라는 내가 그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물건 사는 것을 싫어한다

할인은 어느 카드가 유리한지, 사은품은 있는지 따지고 확인해서 마음에 들어야 물건을 사는 마누라다


여자는 덤에 약하다

덤에 약한 여자가 덤 때문에 해외에서 성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다

외국을 여행 중이던 여자가 명품점에서 고가의 물건을 샀다

고가의 물건을 샀으니 우리나라처럼 덤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덤이라는 표현을 special service라는 콩글리시로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남자 점원은 알았다고 미소 지으며 여자를 창고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기서 성폭행을 했다

성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무척 난감해하였다

special service가 그 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잠자리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은어였기 때문이다


덤이 부메랑이 되어 비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주휴수당이 그것이다

산업화 초기에 저임금을 받으며 휴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가 주휴수당이다

일요일은 쉬게 하고 쉬어도 임금을 준다는 덤은 근로자에게 매력적인 제도였다

주휴수당은 개근해야 주기 때문에 결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기업주에게도 손해가 없었다

주휴수당, 상여금 제도가 그렇게 생겨났고 운영되어 왔다

우리나라와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되는 특이한 급여체계다

최근 급격하게 임금이 오르자 이제는 기업주가 덤인 주휴수당을 줄 수 없다고 하여 세상이 시끄럽다

경제학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듯이 분수를 넘으면 덤이 아니다 


직장에서 은퇴할 때 이제부터 남은 생애는 덤이라고 생각했다

정년을 맞이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이 웃으며 직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노년의 삶을 덤이라고 하지만 노인을 정의하는 기준은 없다

100년 전에 정해진 65세 노인의 기준은 기대수명이 늘어난 지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65세부터 74세 사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장년, 서구에서는 young old라고 부른다

경로당에서도 75세가 넘어야 심부름을 면하는 나이라고 한다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장년을 못 면했다

은퇴할 때는 남은 생애가 덤같이 보였는데 지나고 보니 계륵이었다

재수가 없어 100살까지 살면 큰일이라고 마누라는 통장을 움켜쥐기만 한다

장년을 면할 때까지는 알아서 용돈을 해결하라고 눈을 부라리니 할 수 없이 또 이력서를 쓴다

덤으로 사는 장년이라고 직장에서는 문전박대, 집안에서는 천덕꾸러기다


덤은 별수 없다

마누라가 얻어온 덤들도 쓰자니 허접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물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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