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던 작은 애완견이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진돗개에 물려 죽었다
애완견 주인이 진돗개 주인에게 찾아가 진돗개가 왜 애완견을 물어 죽였느냐고 항의했다
진돗개 주인은 나도 모르니 진돗개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진돗개에게 물어보라고 한 말은 애완견 주인에게는 더 이상 항거할 수 없는 급소였다
나의 선함이 나에게 선함으로 보상된다는 착각을 버리라는 말이 경제학 입문서에 있다
애완견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잠깐 방심해서 열린 문으로 나간 애완견을 누구라도 내 가족같이 보살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애완견 주인의 잘못된 착각이다
진돗개는 주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주인이 허락하지 않은 침입자는 응징하도록 훈련된 개다
며느리가 뿔났다
시아버지가 한 일이니 말도 못 하고 분을 삭이느라 눈물까지 고였다
전후 사정을 모른 채 맞닥뜨린 하나의 현상 때문이다
증거가 확실하고 알리바이가 완벽한 사건의 현행범은 눈앞에 서 있는 시아버지다
며느리가 일이 있어 재정이와 재민이를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한동안 잘 놀던 손자 두 놈이 보채기 시작했다
재민이는 낮잠 시간이 되어 잠투정하는 것이고 재정이는 심심해서다
마누라가 재민이를 재우는 동안 재정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오라고 했다
재정이를 데리고 마트에 갔다
뜨거운 땡볕에 공원에 있을 수도 없고 시원한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며 과자라도 사 줄 요량이다
재정이에게 고르게 했더니 과자를 보이는 대로 카트에 집어넣는다
많이 덜어내었어도 금세 한 아름이다
맨손으로 들고 가기에는 과자가 너무 많아 보였는지 계산원이 봉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더니 과자를 비닐봉투에 담아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트에서는 상품 담는 비닐 봉투를 주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비닐봉투 사용이 규제되어 그렇단다
고객이 필요하다고 하면 변칙으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돈 받고 판다
남자들은 계산대에서 카드만 내밀고 상품이 얼마에 계산되는지 무슨 봉투에 담는지 관심이 없다
영수증과 봉투도 보지 않고 주는 대로 들고나온다
그것이 실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재정이는 할아버지가 사준 과자를 먹으며 놀았다
과자를 담아온 봉투째 들고 다니며 과자를 먹었다
포장지를 뜯어서 과자를 봉투에 쏟아붓고 포장지도 봉투에 함께 넣었다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고 다니면 청소하기 힘들어 내가 그렇게 시켰다
껍질이 있는 과자는 알맹이를 먹고 껍질은 봉투에 넣으라고 했다
잠에서 깬 재민이도 봉투를 들고 다니며 재정이와 같은 방법으로 과자를 먹었다
봉투에서 과자를 꺼내 할아버지도 주고, 할머니도 주고, 손자 두 놈이 과자를 먹으며 잘 놀았다
며느리가 돌아왔다
재정이와 재민이는 봉투에 머리를 박고 과자를 찾아 먹고 있었다
지저분한 쓰레기봉투를 왜 뒤지느냐며 며느리가 재정이에게서 봉투를 낚아챘다
재정이는 할아버지가 준 것이라며 고자질까지 했다
기가 막힌 며느리가 아기들이 쓰레기봉투를 뒤지면 할아버지가 말려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했다
봉투를 들어보니 과자는 바닥에 몇 개 남아있고 과자 껍질만 담긴 쓰레기봉투 그대로다
과자를 사 온 재정이에게 물어보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
재정이는 아직 말이 서툴러 의사표시를 못 한다
봉투 겉면에 종량제 쓰레기봉투라고 적혀 있어서 생긴 오해다
쓰레기봉투라고는 해도 새 봉투에 과자를 담아 왔을 뿐인데 무엇이 어떠랴 했던 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며느리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고 맡긴 아기들을 잘 보살펴 주리라고 기대했던 시부모다
돌아와 보니 시어머니는 아기보느라 힘들었다고 잠자고 있다
시아버지는 프로 야구 중계에 빠져서 며느리가 들어와도 아는 체도 않는다
아기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다
누구라도 뿔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찰에 아동학대로 고발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마트에 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쓰레기를 사 들고 온다
쓰레기봉투는 쓰레기만 담아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똑같은 비닐봉투인데 백화점 이름이 적히면 명품포장이고, 쓰레기봉투라고 쓰면 내용물은 모두 쓰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