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친구가 시집 못간 이유

재정이 할아버지 2017. 3. 22. 20:32

국민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모두 같은 마을에서 태어 났어도 다른 곳에서 살다가 일년에 한번씩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며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자리다

국민학교 동창 모임은 격식도 예의도 팽개치고 코흘리개로 돌아가 싫컷 망가지고 오는 자리이다

잘난 친구도 없고 못난 친구도 없다

오십초반에 처음 모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얼굴과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서먹하고 힘들기도 했다

한번 두번 만나니 옛날 생각이 되살아 나고 그리워져서 소풍날 처럼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 있어서 처음 부터 참여하지 못하고  질서가 잡힌 다음 참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모임에 나가던 날  여자 동창이 내 옆에 앉으며 장가를 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나는 너 때문에 시집을 못 갔는데 장가를 가버렸으니 나쁜놈이라고 친구들에게 고자질을 했다

여고생 투포환 선수로  도대표 선수 까지 한 친구다

여전히 당당한 체구의 여장부지만 시집은 못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보자 마자 자기가 시집을 못 간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배꼽을 잡고 웃느다

친구들이 사연이 궁금해서 다그쳐 물어보니 그럴만도 했다

국민학교 교복은 정해지지 않았어도 가을 운동회날 입는 운동복, 광목 빤쓰와 학교명이 찍힌 런닝구다

변변한 옷 한벌 사입지도 못하던 시절이라 날씨가 더워지면 입기 시작해서 추워질 때 까지 남자들은 통이 넓은 광목 빤쓰에 하얀 런닝구를 입고 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입학시험에는 턱걸이라는 체력검정도 있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대비해서 턱걸이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여자 친구가 철봉 아래서 턱걸이 횟수를 기록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턱걸이 횟수를 세기 위해 철봉에 매달린 친구들을 올려다 보니 통이 넓은 빤쓰 속으로 고추만 보이더란다

그래서 친구들 고추를 모두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내 고추가 제일 예뻤고 내 고추만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를 만나도 내 고추만 못해서 시집을 못갔다는 것이 그 친구의 시집을 못간 이유이었다

친구들이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연애라도 하라니까 그 친구는 풋고추만 좋아하지 빨간고추는 매워서 못먹는다고 해서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얼마 뒤 그 친구는 목사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이번에도 그 친구가 왔길래 잘 지내느냐고 인사를 했더니 목사 고추가 네 고추만 못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고향은 땅이 아니라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