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모임이 있어 대전역에 갔다
내가 왕성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8-90년대 대전역은 대전시내에서 제일 번화가이고 상권의 요지이었다
사무실이 대전역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대전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회식도 많이 했다
퇴직한 직장동료들이 일년에 한번 모이는 모임은 자연스럽게 직장생활을 할때 즐겨 이용하던 식당이 모임장소가 된다
노인들 모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나들이를 하는 이유로 교통이 편한 대전역을 선호한다
모처럼 대전역에 나와 보니 세월을 거꾸로 돌린듯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번성기의 화려함이나 활기는 간곳이 없고 땟물이 흐르는 누추한 건물과 지저분한 골목에는 노인들만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마치 영화 쎄트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사람에게도 습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살던곳, 노는 곳은 버리지 못하는것 같다
육십대 이후 연령층이 젊었을때 번영을 누리던 대전역이 과거에 그들이 놀던 곳이다
젊은이들은 대전역에 기차를 타러 올때를 빼고는 얼씬하지도 않는다
대전역 주변에 진을 치고 눌러 있는 노숙자들과 뒷골목 사창가의 불편함 때문에 오래전 부터 적색지대가 되었다
그래도 그것이 노인들에게는 익숙한 옛모습이고 값이 싸고 투박한 허름한 식당이 편하게 느껴진다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신도시의 번화가는 노인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거리의 음악도 시끄럽기만 하고 식당음식도 전혀 입에 맞지 않는다
나이든 사람의 취향이나 기호에는 맞지 않는 곳이다
작년에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심마니를 만났다
깊은 산속을 다니며 약초를 캐는 사람에게 길도 없는 산속을 어떻게 다니느냐고 물어보았다
심마니는 산에는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 있고 그길을 따라서 다닌다고 했다
우리가 다니는 모든 길도 처음에는 동물이 다니던 길이었고 그길을 따라 사람이 다니면서 발달한것 이라고 하였다
동물이 다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물이 잠을 자고 쉬는 곳이 나오는데 아늑하고 따듯해서 사람도 살기에 좋은 곳이라 후일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되는 곳이라고 했다
이론적인 근거나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말이지만 동물처럼 산속을 누비며 사는 심마니들이 구전으로 알고 있는 말이니 틀린말도 아닌것 같다
산속의 동물들이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물들이 잠을 자는 곳에서만 잠을 자듯 사람도 다니던 길과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기 싫은 동물적 습성은 분명히 있는 모양이다
대전역 뒷골목에는 캬바레, 다방 간판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오래전에 놀던 익숙한 길을 따라가는 나도 오래된 대전역 소품의 하나이다
모임장소에 갔더니 대전역 소품이 방안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