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천만다행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30. 05:24

더럽게 재수없는 꿈을 꾸었다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낯선 사람이 나를 부른다

조사할게 있다면서 건장한 청년 두사람이 내팔을 꼼짝 못하게 붙잡고 차에 태운다

무슨일이냐고 아무리 물어도 두사람은 대답이 없다

큰 관공서 건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니 무당이 앉아 있는 점집이다

거기에는 나처럼 불잡혀온 젊잖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무당 앞으로 가니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내 얼굴을 한밤 바라보다가 관상은 정승감이라고 말하며 다음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면접시험장 처럼 꾸며진 방에는 검은 정장차림의 사람들 여럿이 책상앞에 앉아 있었고 나에게 손짓으로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서 주는 커피를 마시고 나니 이름, 주민등록 번호, 사는 곳, 직업같은 신상을 물었다

알려 주었다

그러자 머리를 짧게 깍은 조폭같이 생긴 남자가 지금 부터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겁을 주었다

마치 죄인을 취조하는 듯한 강압적 태도라 겁이 났다

조폭같이 생긴 남자가 군대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고 예비군, 민방위 까지 모두 마쳤다고 대답했다

아들도 군대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큰아들은 원통에서 작은 아들은 인제에서 만기제대 했다고 대답했더니 아주 만족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애국자 집안이라고 칭찬을 했다

두번째는 신경질적으로 생긴 깡마른 사내가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살고 있는 집한채와 고향에 논밭이 조금 있다고 대답했다

깡마른 사내는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고향의 땅은 부동산 투기가 아니냐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고향의 땅은 내가 은퇴후에 농사를 지으려고 예전에 사둔 것이고 지금도 내가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세번째 질문자는 여자인데 깐깐한 말투로 상속이나 부동산 거래를 할때 탈세를 한것은 없느냐고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물었다

조상 복이 없어서 유산이나 증여로 받은 재산은 동전 한닢도 없고 부동산을 사고 팔때도 법무사가 내라는 대로 꼬박 꼬박 다 냈으니 확인해보라고 하니까 불쌍하다는듯 혀를 끌끌찼다

네번째 질문자는 조금 능글맞은 목소리로 아들 학교문제나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위장전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시골에서만 산 사람이라 위장전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다고 했더니 알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두꺼운 금테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던 노인이 발표한 논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무식해서 논문을 왜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아무말 없이 질문자 뒤에  앉아서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던 제일 높은 사람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나에게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고,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으니 국무총리 후보로 추천을 하려고 한다며 공손히 대답했다

내가 깜짝 놀라며 은퇴한 백수라 손자나 키우고 주말농장 농사를 짓는 주제에 무슨 국무총리를 하느냐고 펄쩍 뛰었다

높은 사람은 관상도 좋고 당신처럼 흠결없이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어서 그러니 나라를 위해서 국무총리 후보 추천을 허락해 달라며 무릎을 꿇고 절까지 했다

기가 막혀서 면장도 아니고 국무총리를 나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하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높은 사람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고 연설문 대독이나 하는 것이라 머리 쓸 일도 없으니 집에서 노는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사정을 했다

나는 내가 없으면 손자 어린이 집에도 못가고 감자도 물을 안주면 말라 죽어서 안된다고 버텼다

그러자 나에게 질문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이렇게 귀한 분을 놓치면 나라가 위태롭다며 내 팔과 다리 붙잡고 다음 방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팔과 다리를 잡혀 질질 끌려 가면서 죽어도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잠에서 깼다

꿈이기를 천만다행이고 끌려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꿈속에서라도 더럽게 재수 없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