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세상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동력은 전쟁과 유행이라고 한다
전쟁은 사람도 죽이지만 도시의 건물을 파괴하고 황폐화시킨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새로 건설되는 도시는 파괴된 도시보다 발달된 설계와 기술을 동원하여 편하고 기능이 향상된 도시로 탄생한다
새로운 설계와 기술은 그시대의 유행을 반영하게 된다
석기에서 청동기, 철제로 건축자재가 발전하였는데 새로움이라는 유행이 발전방향을 선도한다
만약에 전쟁이라는 파괴적 행위와 유행이라는 창조적 행위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원시인처럼 초막집에서 사냥으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팔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
지은지 20년도 안되는 새집인데도 유행에 쳐지고 수익성이 낮아서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낳다는 권유도 받는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집이 허물어진다면 당연히 유행과 수익성을 고려해서 다시 짓는 것이 맞다
우리집이 유행과 수익성에서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집의 크기는 전에 살던 사람이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서 지은 집이라 두사람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다
집안 구조는 2층과 3층을 같이 쓰는 복층 집이다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은 3층에 하나 뿐이다
부동산 사무소에서는 2층과 3층을 작은 방으로 쪼개서 세를 놓으면 몇해 안에 투지비용을 충분히 뽑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자고 꼬득인다
집을 다시 지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요즈음 출시되는 가전제품이 크고 넓어서 20년 전에 지은 집의 작은 문과 좁은 베란다에는 들어올 수도 없고
놓을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사올때 가져온 냉장고와 세탁기가 오래되어서 새것으로 바꾸려 해도 놓을 장소가 없어 차일 피일 미루고 있는 참이다
우리 마을은 20년 전에 개발하여 건축된 집들이라 형편은 모두 같다
대부분 원룸으로 지어서 월세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처음 집을 지을 당시에는 작은 방을 여러개 만드는 것이 수익성이 높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세입자들이 작은 방보다는 큰방, 방 한개보다는 두개를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그래서 방이 작고 하나뿐인 원룸은 세입자 구하기가 어렵다
세입자가 없어 빈방을 그대로 두면 월세를 못받는 손해에 그치지 않는다
방은 비어있어도 공공요금은 내야 한다
공공요금으로 매달 몇십만원 이상 헛비용이 나가니 원룸 건물주는 견딜 수가 없는 딱한 형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원룸형 건물은 세들어 살려는 사람이 없어 유행과 추세에 맞추어 새로 짓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부동산 사무소와 건축업자는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건물주에게 집을 팔거나 새로 지으라고 집요하게 달려든다
집을 새로 지으면 깨끗하고 방이 커서 금방 세입자가 들어온다
새로 지은 집이 늘어날수록 오래된 작은방은 세입자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사람들이 많아 골목마다 공사장이다
내가 집을 사려고 준비할때 부동산시장은 원룸형 수익성 부동산이 대세이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소개하는 건물은 거의 모두 원룸 건물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은 조용하고 조망이 좋은 집이라는 기준을 정하고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외진 마을에 외진 집을 사게 되었다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이 적은 집을 찾으니 부동산 사무실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이었다
집이 넓고 방이 많으니 우리집은 여름에 자는방, 겨울에 자는방, 마누라하고 싸운날 숨어서 자는 방이 따로 있다
소원대로 넓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며 푸른숲과 공원을 내려다보며 사는게 낙이다
이웃에 사는 원룸 건물주들이 공실 때문에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는 날에도 우리는 유유자적이다
공실을 못견디고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난리를 쳐도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이다
유행을 따라가며 사는 것이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맞다
처음 이사를 와서는 수익성이 낮은 집이라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위안을 한다
마누라가 옷장 가득 옷을 넣어두고도 외출을 할때 마다 옷이 없다고 투털거리는 것은 유행때문이다
안입을 옷이라면 버리지 왜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유행은 주기가 있어서 언젠가는 또 입게 되는 날이 올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옷은 몸에 입는 것이고 집은 사람이 사는 것이다
유행은 입는 옷에 장식을 붙이고 떼는 것이고 집은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명품은 요란한 장식이 없는 단순한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금방 사서 입어도 10년은 입은것 처럼 편하고 10년을 입어도 새것 같은 옷이 명품이라는 광고 멘토가 내가 물건을 사는 기준이다
유행은 빠르게 변하고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나는 일을 시작할때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한다
집을 살때에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유행에 따르지 않았다
중세시대 부터 살던 집을 지금도 고쳐가며 살고 있는 유럽의 사람들 처럼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내집은 나만의 명품으로 간직하고 싶다
불편하면 참고 살고, 수익성이 낮으면 절약해서 살면 된다
고기 먹고, 양주 먹고, 안마의자에 누워 사는 것이나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워서 사는 것이나 산다는 목적은 같다
가치나 행복의 기준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