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시켜서는 못하는 일

재정이 할아버지 2017. 7. 27. 05:37


방학이라 생원일기도 접고 조용히 지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밖이 어수선하다

기타소리, 섹스폰 소리, 북소리에 시끄러워서 집안에 있을 수가 없다

주막공원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예술가들의 리허설로 바쁘다

주막공원은 방학이 되면 바쁘다

학생들의 특별활동 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오늘은 수요일 문화가 있는날 행사다

전통 사물놀이와 가수들의 노래, 그리고 째즈연주가 있다  

거리공연은 누가 시켜서는 못하는 일이다

사물놀이패나 가수,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는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교통비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수입도 없고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활동이다

좋아하는 예능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는 꿈을 품고 기와 혼을 단련시키는 사람들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어지간히 부모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이기도 할것이다

공부 잘해서 돈 많이 버는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지 거리에서 북이나 두드리며 살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지한 청년 예술가들의 소망과는 달리 공연관객은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 뿐이다

오른쪽 파란간판이 있는 집이 우리집이다

나는 시끄러워서 집안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기왕에 벌린 놀이판이니 잔치라고 생각하고 즐기자

북소리에 추임새를 넣고 흥을 돋웠더니 공연이 끝나고 고수가 와서 큰절 까지 하고 갔다

은퇴한 노인들이 살기 좋은 곳은 대중교통이 편한 곳, 종합병원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곳, 공짜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만 빼고 우리동네는 병원도 가깝고 구경거리가 많다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연구소 마다 박물관이 있고 시민을 위한 행사와 공연이 많다

내가 생원일기를 쓰는 것이나 젊은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시켜서는 못하는 일이다

나도 방학이라 쉬고 싶었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또 일기를 쓴다

거리의 예술가들도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도 끼와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미친듯 북을 두드린다

어제는 퇴직한 직장 동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남원에서 5년을 함께 지낸 선배가 나를 보자 환한 얼굴로 술잔을 건넨다

선배에게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선배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모두가 부러워 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얼마후 대기업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 입학을 했다

선배가 극구 말렸지만 아들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선배 아들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취직도 되지 않고 개업도 못해서 백수로 지내다가 홀연히 가출을 해버렸다

선배는 아들에게 크게 실망하여 몹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들이 행정고시 합격증을 들고 돌아왔다고 한다

나에게 술을 따라주며 선배는 감격해서 눈물까지 보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시켜서는 못하는 일인데 제가 하려고 하니 좋은 날도 온다고 말했다

젊은 거리의 예술가들도 부지런히 정진하고 대성해서 꽃가마 타고 집에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