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가로등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니 집안이 칠흑같이 어둡다
집안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도 어두움과 적막이다
며칠전 소나기가 거세게 내리면서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는데 그때 가로등 전기시설이 벼락을 맞은 모양이다
해가 지면 집앞 공원에는 항상 가로등이 밝게 켜져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우리집 거실은 미등을 켜 놓은것 같아서 밤중에 불을 켜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오히려 보름달밤 같은 실내 분위기를 즐기며 산다
새벽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면 공원의 나무숲이 가로등 불빛으로 야광처럼 빛을 내며 산들거린다
곤하게 단잠을 자고 깨어난 나도, 숲속의 나무도,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도 이른 새벽에 제일 건강하다
가로등이 꺼지니 거실이 그믐달밤이 되었다
마누라가 새벽잠이 많아서 불을 켜거나 소리를 내면 싫어해서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한다
베란다에 나와 앉으니 휑한 하늘이 보인다
가로등이 밝게 비치는 날에는 나무만 보였는데 나무는 어둠속에 숨어버리고 밝음에 가려졌던 하늘이 보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하늘만이 아니었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도 보였다
어려서 보았던 별이다
마당에 깔린 멍석에서 어머니 팔베게를 베고 누우면 바다같은 하늘이 나를 덮는다
그때 그 여름밤을 수놓은 북두칠성도 그자리에 그대로 있고, 은하수도 있고, 별똥도 날아간다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은 누구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별은 꿈이고 희망이다
아무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도 별나라다
꿈과 희망이기에 별이 붙으면 좋은 것이고 최고가 된다
학생이 숙제를 잘하면 별도장을 찍어주고, 출세하면 계급장에 별이 붙고, 재주가 뛰어나도 별이라고 부른다
시골에서 해가 지면 밤하늘에 별들이 송글송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자란 나다
그 별을 바라보면서 꿈도 키우고 희망도 품었다
지금은 해가 지면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 아래에는 도로와 사람만 보인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세상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가로등이다
권력과 돈만 비추는 가로등 밑에는 탐욕으로 가득찬 부나비떼만 모여든다
가로등이 꺼져야 밤하늘이 보이고 별이 보이니 세상이치가 경이롭다
나도 직장에서는 월급봉투만 보고 살던 속물이었다
은퇴를 하고 모든 욕심에서 자유스러우니 이제야 사람이 보인다
가로등 아래서 별 볼일 없이 사는 사람들이 딱하게 보인것도 은퇴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