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말이 금년도 고용시장의 화두다
이름과 연락처 이외에는 알려고 하지 말고 개인의 능력만 검증해서 직원을 채용하라는 정부의 권고 때문이다
학연, 지연, 혈연에 병든 우리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환영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어가 마뜩잖다
좋은 말도 많은데 왜 부정적 의미인 블라인드라는 표현을 써야 했는지 아쉽다
블라인드라는 명칭만으로는 좋은 뜻과는 다르게 밀실, 야합, 부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눈을 감고 할 수 있다고 하면 자신있게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극상언어다
반대로 눈을 감아준다고 하면 잘못도 못본체 한다는 말이 된다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사원을 눈을 감고도 뽑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배양시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나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는 법이 우선하는 법치사회라 무엇이든 획일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에 익숙하다
필요한 사람을 가려서 뽑는 제도중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실한 것은 시험만한게 없다
사지선다형 답안지로 평가하는 시험은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수치화해서 서열을 매기는 기준으로 부족함이 없다
암기력 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인성과 적성같은 요소평가가 빠진 단점이 있기는 해도 지금도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공무원 채용이 시험제도로 운영되면서 수십년 동안 비리나 부정이 없는 이유이다
블라인드 채용의 원조는 일본의 미라이(未來)산업 야마다 사장이다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야마다 사장의 인사원칙은 사람의 능력은 모두 같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신입사원 면접시험장에서 야마다 사장은 시험장에 제일 먼저온 순서대로, 키가 큰 순서대로, 회사와 거리가 먼곳에서 온 순서대로와 같이 그때 그때 기준같지도 않은 기준으로 얼굴도 보지 않고 이름도 묻지 않고 사원을 뽑는다
뽑아 놓은 사원들을 야마다 사장은 바보, 멍청이들이라고 부른다
멍청이들에게 일을 시켜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고 떠벌이고 다닌다
실제로 사장 자신부터 회사일에는 관심이 없다
출근하면 팬티만 입고 앉아서 좋아하는 연극 공연 포스터만 사무실에 붙였다 뗐다하는 것이 일과이다
멍청이도 제가 받는 월급가치 만큼 일을 찾아서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승진도 제비뽑기다
멍청이도 부장감투를 씌우면 부장짓을 하고 상무자리에 앉히면 상무짓을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승진에 대한 불만이 없다
재수가 없어서 승진을 못한 것이니 억울할 것이 없는 것이다
승진한 사람은 미안해서 사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하수도 청소나 잡일을 맡는다
그래서 턱없이 낮은 보수에도 이직율이 낮고 기업 경쟁력과 성과가 높은 강소기업이다
남의 나라 작은 회사 이야기이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복면가왕처럼 노래만 듣고 노래를 평가하듯 능력만 평가해서 신입사원을 뽑는다면 개천에서 많은 용이 태어날 것이다
두눈을 부릅뜨고 지연, 혈연, 학연을 찾아서 신입사원을 뽑는 것보다 백번 옳다
다만 뽑을 때는 눈을 감고 뽑더라도 누가 어떠해서 뽑혔다고 소상히 공개하여 결과에 동의를 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강원랜드 같은 부정채용이 벌어지는데 눈까지 감고 있으라면 블라인드는 고용비리 멍석이 될수도 있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친다고 이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을 지키고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야마다 사장처럼 인식도 같이 변해야 한다
눈가리고 아웅소리를 낸다고 고양이가 아니다
고용주의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눈감으라 해놓고 신발을 훔쳐갈까 걱정하는 기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