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손맛

재정이 할아버지 2017. 9. 20. 05:47

손자가 밥을 먹지 않는다

두돌짜리 손자는 밥을 주면 말똥말똥 밥을 들여다 보고, 냄새도 맡아 보고, 그러고 나서 제 맘에 들어야 받아 먹는다

입에 들어간 밥도 뜨겁거나, 맵거나, 짜거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용케도 뱉어낸다

손자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인내심과 어떻게든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집념이 필요하다

손자가 우리집에 올때는 작은 배낭을 메고 온다

배낭 안에는 여벌옷과 물, 그리고 도시락이 들어있다

며느리는 손자를 보낼때 항상 도시락을 싸서 보낸다

어른들이 먹는 음식은 맵거나 짜거나 뜨거워서 아이 식성에 맞추기가 힘들다고 아기밥을 따로 해서 보내는 것이다

오늘 도시락은 유난히 예쁘게 밥과 반찬을 담아 보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마누라가 예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 했다

그런데 손자는 예쁜 도시락을 먹지 않고 계속 뱉아내서 마누라가 진땀을 흘린다

마누라가 지쳐서 손자에게 밥 먹이는 것을 포기하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손자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오늘 도시락은 아들이 싸준것이라고 한다

손자 도시락을 마누라와 내가 맛을 봤다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간이 밋밋해서 예전과는 맛이 조금 다르다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다

딸이 없는 집에서 엄마가 음식을 할때 옆에서 도와주다가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해졌다

한동안 컴퓨터로 요리관련 자료를 보며 집에서 실습도 하던 아들이다

아들이 요리를 할때는 기구를 쓴다

재료를 손질하고, 익히고, 접시에 담아내는데 손을 쓰지 않고 모두 기구를 사용한다

사내자식 배변습관이 손을 사용하므로 그것이 께름직해서 음식을 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한 마누라 탓이다

기구만 사용해서 만든 음식도 접시에 담아내면 양식집 메뉴 못지 않게 화려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가끔 손자 도시락을 아들이 만든 모양이다

마누라가 만든 음식은 조금 투박하기는 해도 깊은맛이 나서 맛있다

마누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음식을 한다

흔히 음식맛은 손맛이라고 하는데 정말 손맛이 있는가 보다

손자도 손맛을 아는지 아들이 만든 밥을 먹지 않으니 그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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