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있는 마을은 참 독특하다
마을을 중심으로 윗쪽에는 군부대가 있고 이랫쪽은 연구단지다
연구단지의 주거지역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우리 마을에서 자식자랑은 금기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큰아들은 어느 연구소 박사, 둘째 아들은 어느 나라에서 유학중이라고 대답한다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 대부분이 모여있는 지역이라 석,박사가 제일 많이 사는 동네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줍잖게 아들 자랑을 했다가는 무안 당하기 쉬운 마을이다
박사나 석사는 겉으로 표가 나지도 않지만 모두 바빠서 점심시간에만 밥먹으러 나온다
그래서 낮에는 문관이 마을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무관이 마을을 지배한다
군인들은 낮에는 꼼짝도 하지 않다가 밤이 되면 몰려 나온다
군인들은 부대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변변한 음식점이 없어서 술을 마시고 싶으면 우리 마을로 내려온다
군인도 연구원도 박봉의 월급쟁들이라 부자가 없는 동네다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규제가 심해서 거리에 노점상도 없다
교통도 불편하고 시장도 없으니 물가가 비싸서 가난한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오죽하면 주민쎈터에서 영세민 대상 취로사업을 할때 대상자가 없어서 이웃동네에서 데리고 온다
군인들은 육,해,공군이 다 있고 간호사관학교와 병원이 있어서 여군이 유독 많다
예비군 훈련장이 있고 인근 대학에는 준사관을 양성하는 군사학부가 있어서 대학생들도 사관생도 비슷한 제복을 입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저녁이 되면 퇴근하는 군인, 훈련이 끝난 예비군, 하교하는 학생들로 거리는 군복의 팻션쇼장이 된다
나의 군대시절에는 준사관을 하사관이라고 했다
직업군인이지만 인기가 없어서 모병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사관을 충원하기 위해서 현역사병 상대로 강제 차출도 했는데 요즈음에는 대학에 준사관 양성과정이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에 문제 하사관이 있었다
운전병으로 근무하다가 사고를 내서 무마조건으로 장기하사에 지원한 사람이었다
직업군인이 적성에 맞지 않고 능력도 미치지 못해서 항상 우는 얼굴이었다
오로지 하루 빨리 제대할 수 있기만 바라던 하사관이었다
어느날 하사가 나를 찾아와서 육군본부에서 공모하는 하사관 생활수기 공모전에 출품할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전역신청도 번번히 부결되니 입선되면 보내주는 포상휴가라도 가고 싶다며 사정을 했다
나는 하사에게 소설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수기를 써주었다
하사의 수기는 당선되었고 보름의 휴가를 다녀왔다
그런데 몇 달 뒤 하사와 같이 적성이 맞지 않고 능력도 부족한 하사관 정리 지시가 내려왔다
하사에게는 전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었다
하사가 제일 먼저 전역신청을 했다
그러나 하사의 전역신청은 또 부결되었다
부결사유는 소설같은 생활수기 당선자이고 수기 내용을 보면 육군에서 최고의 모범 하사관이기 때문이라는 회신이었다
전역 부결통지서를 들고 좌절하던 하사의 얼굴이 내가 아는 부사관의 모습이다
현대전의 첨단무기는 고도화된 전자장비라서 전문교육을 받은 정예운용요원이 필수이다
그 역할을 하는 준사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직업군인 처우도 좋아졌으니 지원자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전역부결 통지서를 들고 좌절하던 하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