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벙어리 저금통

재정이 할아버지 2017. 9. 13. 06:09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이다

학교를 간다고 나간 아들이 두툼한 지갑을 들고 돌아 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가 흘리고간 지갑을 주워서 가지고 온 것이다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많다

꼽혀있는 명함을 보니 아랫층에 사는 직장후배 지갑이다

얼마전에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장후배가 아랫층으로 이사를 왔다고 인사를 하고 갔는데 그 후배의 지갑이었다

아랫층으로 내려가 후배의 부인에게 지갑을 전해 주었다

좋은 일을 한 아들이 후배로 부터 감사의 말과 칭찬을 듣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갑을 돌려주고 며칠이 지나도 후배에게서는 아무말이 없다

직장에서 몇번 마주쳤는데 고맙다는 말은 커녕 오히려 나를 외면하는 듯한 느낌 까지 들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많은 현금 중에서 아들이 몇장을 꺼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돌려 받은 지갑에서 현금이 빈것을 후배가 알고도 선배 아들이라서 말하기 어려워 참고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후배 사무실로 찾아가 후배에게 지갑을 돌려 받았느냐고 물었다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고 지갑에 든 현금도 이상이 없다고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나는 후배에게 고마움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사는 것이 예의라고 야단을 쳤다

주운 물건이 지갑이고 많은 현금이 들어있었고 후배가 아무말을 안해서 아들을 의심까지 한 내 생각도 전했다

그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과일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랫층 후배가 지갑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었다

지갑과 현금을 찾아 주었으니 사례를 하라는 의미로 예의를 받아들였다면 내가 못할 소리를 한것이다

나는 과일상자를 아랫층 입구에 던져 놓고 왔다

그리고 그 후배는 사무실에서 만나도 아는체를 하지 않았고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다 

만약에 지갑을 돌려준 그날 저녁에 과일상자를 들고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아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어 주었다면 나는 고맙게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가 되었을 것이다

벙어리 저금통이 있다

외출하고 돌아와서 주머니에 남아있는 동전을 넣어두는 저금통이다

저금통 구멍으로 동전을 넣으면 땡그랑 돈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그만이다

얼마가 들어 있는지 무엇에 쓸것인지 생각도 없이 동전을 넣고 동전을 먹고도 테가 나지 않는 저금통이다

친구를 만나서 밥을 사주었는데 아무말 없이 가버리는 친구가 있다

여행을 갔다가 기념품을 사서 선물을 했는데 받고도 아무말이  없는 친지가 있다

애경사에 먼길을 찾아가 부조를 하고 왔는데 아무말이 없는 직장동료가 있다

모두 벙어리 저금통이다

맛 있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 좋은 선물 잘 쓰고 있다는 인사, 덕분에 큰일을 잘 치루었다는 감사의 말은 나의 성의와 배려를 가치있게 하는 관계의 윤활유다

윤활유가 부족한 기계는 소리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고장이 난다 

우리나라는 벙어리 저금통의 나라다

근로자, 기업인,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벙어리 저금통에 집어 넣고 돌아 앉는다

내가 할 일과 할 말은 다 했으니 잘못된 것은 내말을 안들은 네 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시끄럽고 탈만 무성하다

벙어리 저금통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저금통 주인도 모른다

상대가 화가 나기전에 서로 말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때를 놓치면 좋은 말도 욕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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