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이름을 부르면 "네!"라고 대답하며 손을 든다
아직은 말을 못하니 정확히 "네!"라고는 못하지만 "네!" 비슷한 소리를 지른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이름이 있다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풀포기 하나, 기어 다니는 벌레도 이름이 있다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이름은 내가 지어 주리라고 약속을 했다
예전 같으면 집안 마다 항열이 있어 성과 항열자를 빼고 나머지 한 글자만 정하면 아이의 이름이 되니 수월했을것 같다
이름을 지으려고 하니 생각보다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아들 내외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으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으니 예쁜 이름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이름도 유행이 있다
옛날 어른들 처럼 항열을 고집하는 것은 꼰대짓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철수와 영이가 유행이었다
조금 지나서 우리말 이름이 유행을 했다
지금은 연예인 예명 짓듯 준, 서, 경, 민 같은 이름자가 유행이다
손자가 뱃속에서 무럭 무럭 자라는 동안 나는 인터넷으로 작명법을 공부하며 부르기 쉽고, 좋은 뜻을 담고, 음양오행이 맞는 글자조합을 수없이 만들고 지웠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나는 날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해서 이름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종국이라는 내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다
흔하다 보니 이름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나하고 짝이 되어 옆에 앉은 친구도 종국이었다
성은 달랐지만 종국이라고 부르면 둘이 동시에 대답을 하고 친구들은 네가 아니고 너 라는 식으로 놀려댔다
군대에 갔는데 우리 중대에 내가 전입하기 직전 종국이라는 사람이 근무를 하고 제대를 한 모양이다
그 선배의 별명이 내 별명이 되었고 공교롭게도 그 선배가 맡았던 보급병 보직을 내가 맞게 되어 쌀종국이 되었다
옆 중대에는 나하고 성 까지 같은 종국이가 있었다
그 종국이가 사고를 친것이 나로 오인되어 모두가 놀란적도 있었다
경상도에 출장을 갔더니 종국이 두 마리 치킨이 지역 브랜드로 인기가 있었다
가는곳 마다 종국이 두 마리 치킨 가게가 있어서 모두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종국이 두 마리 치킨은 내가 즐겨보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에서도 경상도 지역 경기에서는 자주 보였다
이름 때문에 즐거웠던 기억은 2002년 월드컵 경기 때이다
송종국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라디오로 응원하는 광고에 종국이가 등장 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자동차 시동을 켜면 라디오에서 "종국아 힘내!"라는 멘트가 나와서 나도 힘이나고 기분도 좋았었다
그래서 손자 이름은 쉽지만 흔하지 않고, 예쁘지만 천하지 않은 이름을 지으려고 했다
한자는 뜻 글자라 획 하나에도 의미가 다르다
사연이 있는 글자도 있다
심을 "재"자는 나무를 잘라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자른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무성한 숲을 이루었다는 고사가 담긴 글자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재자로 정했다고 말 했더니 아들은 바르게 심겠다며 바를 "정"자를 골라서 재정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내가 고심을 해서 지은 이름이라 그런지 손자가 잘 자랄것 같고 큰 사람이 될 것 같다
재정아 라고 부르니 손자가 한손을 번쩍 쳐들며 함빡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