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선배 아들 결혼 청첩이 있어 예식장에 갔다. 선배 나이는 일흔이 넘었다. 아들이 둘인데 장남의 결혼이고 아들 나이도 마흔을 지났다. 선배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나누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선배와는 자주 만나서 밥을 먹는 사이인데 그동안 아들 이야기는 금기어이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못나지도 않은 아들 둘을 일흔이 넘도록 결혼을 시키지 못했으니 아픈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살아온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객으로 온 옛 직장 동료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녀 결혼 이야기가 되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결혼 못 한 골치 덩어리 자식을 하나씩은 두고 있었다. 아들은 못 가서 안 가고, 딸은 싫어서 안 가고 부모 애를 태우는 화근덩어리를 집안에 하나씩 안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아들과 딸들이 결혼을 못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우리 세대에는 지금보다 잘 살지도 못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결혼이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남자는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 건강하고, 여자는 알뜰하게 살림하고 자식을 양육할 마음의 준비만 있으면 결혼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요즈음 젊은이들 생각은 너무 복잡한 것 같다.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 배우자의 조건이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여자들은 활발한 사회진출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진 마당에 구태여 결혼까지 해서 가사나 육아같이 어렵고 힘든 일을 사서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백인, 중산층, 남성이 지배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이 정설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여러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성해방운동, 여권신장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는데 이제는 이미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여성 합격률이 높고 서비스업에서 남성은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관학교도 여자 생도를 모집한다는 것이 큰 뉴스이었는데 이제는 수석 졸업도 여자 생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 여자 전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아들을 못 낳는 여자는 칠거지악으로 죄지은 여자였는데 지금은 딸 많이 낳은 여자가 왕이다. 중국에 있다는 모계사회 종족 왕 할머니처럼 눈을 내리깔고 앉아서 딸네 집을 쥐락펴락하고 사돈댁에 감 놔라 배 놔라 갑질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엘리트 흑인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흑인이면서도 흑인 남성과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고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과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자신을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많은 것 같다
병원이나 나들이에 손자를 데리고 가면 외손자냐고 묻는다. 친손자라고 하면 깜짝 놀라며 친손자를 데리고 다니는 분도 있다며 신기해한다. 요즈음 며느리들은 불편해서 시부모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들이 장가를 못 가는 것도 속이 상한 일이지만 장가를 가도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남자로서의 삶과 아들이 살아갈 남자의 삶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같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아들이 우리 집에 오면 살짝 불러내어 힘들지 않니, 어려워도 참고 살라 하면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 주게 된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시집 보낸 딸에게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