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어보면 생각대로 안되는 일이 참 많다
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슬금 슬금 하는 일인데도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면 매끈하고 쉽게 되지 않고 엉성하다
그래서 노인을 찾아가서 물어 보면 별것이 아니라는듯 쉽게 알려 준다
내가 농업을 전공했고 농업직 공무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주말농장 농부이지만 농사일을 한마디로 정의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농사일에 대한 설명은 적당히, 알맞게, 대략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대처가 가장 정답에 가깝기 때문에 꼭이나 반드시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할때 농업직은 M/T단위 업무라 포용력이 크고 너그럽다고 했고, 기계직 일은 mm 단위로 놀아서 융통성이 없고, 화학직은 PPM 단위로 살아서 좁쌀 같다고 서로를 놀리며 지냈다
농업직은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암묵지가 재산이라면 공업직은 수치화 되고 공식화된 형식지가 능력의 척도가 된다
마누라는 음식을 잘 한다
혼자 다니며 다듬고 썰고 소금이나 양념을 툭툭 던져 넣어서 그릇에 담아 오는데 내 입맛에는 항상 딱 맞는다
맛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음식 재료나 양념, 조리방법을 종업원에게 물어 보거나 생각하며 먹는듯 하다
집에 와서는 그 음식을 흉내 내어 만드는데 처음에는 이상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식당의 그 음식 맛을 내는 재주를 가졌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음식을 만들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한다
며느리가 와도 음식에는 손도 못대게 하고 혼자서 한다
장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손끝으로 느끼고, 넣고, 빼는 혼자만의 암묵지가 맛을 내는 비결인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토요타라는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 도입이 유행했었다
TPS라고도 하는 토요타의 경영기법은 누가 들어도 탄복할 만큼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효율적이라 모든 회사에서 도입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도 내가 일상생활에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TPS 몇 가지는 재고는 낭비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다. 의사결정은 현장에서 하라가 있다.
칸반 씨스템이나 just in time 같은 생산관리 체계도 알아두면 유용한 이론이다
그래서 그런 기법을 배우려고 경쟁적으로 토요타 공장에 견학을 갔다
그런데 현지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공장 면적이 얼마이고, 하루에 자동차를 몇 대 생산하고, 직원 년봉이 얼마인가 이었다
경영기법은 교과서로 공부해서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쓸데 없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 토요타 관계자는 기법은 형식일 뿐이고 토요타의 성공은 종업원들이 신입사원 시절 부터 익힌 생활화된 암묵지가 열쇠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輕薄短小 작고 가벼운 물건을 잘 만드는 회사다, 현대라고 하면 重厚長大 무겁고 큰 물건을 잘 만드는 회사다 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듯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회사 직원은 그러한 이미지에 맞게 적응하고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의 집합체가 암묵지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10년만 열심히 노력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책에서 배우고 들어서 이해는 한다고 해도 전문가가 될 수 없듯이 몸으로 부딪쳐서 경험하는 것이 잘하는 비결인 것이다
마늘 농사를 처참하게 실패하고 나서 농사경험 부족을 뼈저리게 느껴 반성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