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를 100번째 쓴다
어줍잖은 일기를 쓰면서 숫자 까지 센다고 탓 할지는 모르나 블로그를 열면 개설일로 부터 122일째 생원일기 99회라고 나오니 그것을 보고 알 뿐이다
대중매체의 발달과 IT기술혁신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모든 정보를 숫자로 말하는 것이 보편화 되고 신뢰성도 높아 보인다
이제 막 시작된 대통령 선거도 후보자 별로 지지율을 보면서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 이해가 빠르고 일기예보도 강수확율로 비가 올지 말지를 판단한다
우리가 쓰는 숫자 중에서 100이라는 숫자에는 완성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기다려 인간이 되었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서 탈 없이 100일을 넘겨야 인간세로 넘어온 사람으로 보았다
소원을 비는 기도도 100일이면 정성을 다 했다고 보고 인간의 수명도 100세면 천수를 다 했다고 본다
그러니 내가 생원일기를 100회나 썼으면 일기를 쓰겠다고 한 결심을 실천한 것이고 앞으로도 일기를 지속하는데 문제는 없을것 같다
생원일기는 엽편소설과 수필의 중간 형태로 쓸려고 한다
픽션도 있고 논픽션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주제를 잡아 웃음이라는 재미를 더하는 형태다
문장도 스마트 폰에서 보기 쉽도록 간결하게 쓸려고 노력한다
청소년기 나의 미래희망은 작가 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지만 잘 쓴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사람에게는 끼라는 것이 있다
끼는 재주다
나의 말이나 메모 한줄에도 끼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끼가 이루어지면 꾼이 된다
끼는 무당의 신기와 같아서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기 전에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끼가 있는 사람이 꾼이 되지 못하면 항상 마음의 아픔을 지니고 산다
노래를 하고 싶은 끼가 있으면 서울로 올라가 작곡가 사무실 청소 부터 시작해야지 시골마을 콩쿨대회에 나가서 양은냄비 하나 상으로 받는 다고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서울로 올라갈 용기가 없어서 골방에서 소설책이나 읽다가 공부도 못하고 처자식이 생기니 먹고 사는 문제로 끼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녹슬어 버렸다
은퇴를 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니 녹슬었던 끼의 아픔이 도졌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대학교수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블로그를 통해서 글로 써보라고 권했다
카톡을 이용한 군대 선배들과의 교우가 촉매가 되어 일기라도 쓰고 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녹슨 칼을 갈며 이 칼을 무엇에 써야 할지 확신도 자신도 없었다
하루 하루 버겁고 무거운 마음도 있었다
그런 생원일기가 100회라는 숫자를 채우니 신내림을 받은 무당처럼 마음이 후련하다
큰 무당은 못 되어도 동네에서 동티를 막아 주는 푸닥거리 무당은 되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청소년기의 꿈은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작가이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아쉬움을 블로그라는 작은 공간에서 달래며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것이 행복하다
글은 쓴다는 것은 영혼을 파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읽어도 내 마음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겸손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일관하면 할 말이 없어지니 건방지고 싸가지 없는 말도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마누라는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컴퓨터에 쭈그리고 앉아서 골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궁상스럽고, 집에서 하는 짓은 밴댕이인데 글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처럼 설치는 것도 싫고, 무식한 글이라 읽어도 배울것이 없다는 것이 내 글을 안 읽는 이유다
그래도 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아무도 안 읽어서 혼자만의 외침이 되더라도 하루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살고 싶다
전라도 부안으로 출장을 갔다가 내변산에서 영화 촬영하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큰 다리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삐쩍 마르고 키가 큰 청년 하나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쭈그리고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청년에게 무슨 영화를 찍느냐고 물었더니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라고 했다
영화를 찍으려면 배우가 있어야 하는데 배우가 누구냐고 청년에게 물으니 말 없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젊은 놈이 어른이 묻는데 대답도 안하고 배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영화촬영을 구경하는 무식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무식한 그 청년을 가르쳤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으니 권상우라고 했다
영화도 연속극도 보지 않는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배우는 멋이 있고 잘 생겨야 하는데 저렇게 못생기고 무식한 배우도 있느냐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권상우를 물어보니 요즈음 최고로 인기가 있는 배우라며 같이 사진을 찍던가 싸인이라도 한장 받지 왜 그냥 왔느냐고 안타까워 한다
그렇다
권상우가 무식하고 못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무식해서 사람을 알아 볼 줄 몰랐던 것이다
마누라는 내가 무식하다고 하지만 마누라가 더 무식해서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누라가 읽지 않아도 나는 내일 또 생원일기를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