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조개껍질

재정이 할아버지 2017. 4. 23. 17:38

마누라하고 서랍 정리를 했다

서랍을 빼서 뒤집어 놓으니 언제 어떻게 모아 놓은 물건들인지 잡동사니가 방안 가득하다

서랍을 정리할 때면 마누라하고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서랍을 통째로 빼서 뒤집어 놓고 꼭 필요한 것만 골라 담고 나머지는 버리는 방법으로 정리한다

마누라는 서랍을 열어서 불필요한 것만 꺼내서 버리자는 입장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고 마누라가 뭐라고 하든지 서랍을 빼서 뒤집는다

서랍정리를 자주할 수는 없어서 몇 년에 한번 하게 되는데 할때 마다 느끼는 것은 왜 이런 물건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는 물건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내 물건은 내 책상에 두기 때문에 우리집 모든 서랍은 마누라가 사용한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 한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책상위에 물컵 하나만 있어도 아무일도 못한다

마누라는 반대다

물건이 생기면 아무데나 쑤셔넣고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길을 가다가 홍보물이라도 받으면 나는 바로 버리는데 마누라는 들고 와서 서랍에 넣어 둔다

소소한 것들이 고장 나거나 쓸모없이 되면 나는 바로 버리는데 마누라는 버리지 않고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며  서랍에 넣어 둔다

서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건들은 마누라가 그렇게 해서 모아 놓은것 들이다

요즈음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버리기가 유행이다

평생을 살면서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죽기 전에 정리해서 노후를 깨끝하고 편하게 살자는 소리없는 운동이다

심지어는 육신도 죽으면 쓰레기이니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경치 쫗은 곳에 뿌려 버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을 쓰는 사람도 있다

내가 버리고 싶은 것은 욕심이나 미움같이 가슴이 답답한 마음을 비우는 것이 시작이다

부모나 자식, 친구에게 바라거나 간섭을 하지 않고 조용히 내가 할 일만 하는 처신의 정리도 필요할것 같다

입지 않을 옷이나 쓰지 않을 물건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버리는 것은 정형화된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짐이 될 것들을 버려야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버리기 운동의 취지이다

나는 필요한 것을 골라 담고 마누라는 버릴 것을 골라 내니 꽉 찼던 서랍이 반듯이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조개껍질이 한 웅큼 남았다

마누라 하고 아이들 하고 바닷가 모래밭에서 주워 온 것 들이다

하얗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밤톨만한 조개껍질들은 서랍을 정리할 때 마다 마지막으로 남아서 버려야 할지 두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금 까지 가지고 있는것 들이다

나는 이 조개껍질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미움도 원망도 세월과 파도에 씻기고 다듬어져 그립고 아쉬움만 남은 하얗고 매끄러운 조개껍질이다

조개껍질도 처음 바다에 버려졌을 때는 흉기이었다

맨발로 걷다가 발을 베이고, 넘어지면 상처를 크게 내는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파도에 시달리며 닳고 닳아서 이제는 무슨 조개인지 조차 알 수는 없어도 본연의 아름다운 색과 부드러움만 남아 있다

나는 조개 껍질을 다시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래, 다 버려도 추억만은 간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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