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재정이 할아버지 2017. 4. 24. 16:23

마누라와 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

아직은 이른지 양지 바른 언덕에도 산나물은 보이지를 않는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하고 풀냄새는 향그러운데 내가 찾는 고사리나 취나물은 흔적도 없다

조금 더 깊은 산에 올라가니 나 처럼 빈 바구니를 들고 내려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는 일이 없는 은퇴자들이 소일거리로 나들이를 겸해서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몰려 다니니 우스개 소리로 나물보다 사람이 많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산을 내려 왔다

그냥 돌아 가기가 섭섭해서 강가의 제방에서 쑥을 뜯었다

마누라와 나는 쑥 매니아다

이른 봄에 얼음이 녹고 새싹이 돋기 시작하면 애쑥을 캐서 된장국을 끓이고 요즘 같이 자란 쑥은 떡을 해서 나누어 먹는다

쑥은 나물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흔하디 흔한 풀이다

지구의 북반구에는 어느 나라나 제일 흔한 풀이 쑥이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쑥도 그렇고 마늘도 그렇고 그냥 날로 먹기는 어려운 식재료이니 고통스러운 인고의 과정을 견디고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는것 같다

쑥이 들판에서 흔한 만큼 쓰임새 또한 다양하다

어린 싹은 국이나 떡으로 해서 먹고, 말린 쑥으로는 뜸도 뜨고 모깃불의 재료로도 썼으며  담배가 귀한 시절에는 담배 대신 말아서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농사나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여간 성가신 풀이 아니다

생명력이 워낙 왕성해서 한번 뿌리를 내리면 아무리를 뽑아내도 막을 길이 없는게 쑥이다

산사태가 나거나 버려둔 땅에는 어김없이 쑥이 우거져서 황폐해 졌다는 표현을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쑥대밭의 대표적 사례는 체르노빌이다

원자력 발전소 대폭발 사고가 난  체르노빌의 지명이 현지어로 쑥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이라니 우연 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다   

쑥의 생명력을 대표하는 사례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모든 생명이 사라진 후 제일 먼저 살아난 것이 쑥이라고 한다

쑥은 단오전에 뜯어야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단오 이후에는 너무 독해서 사람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마누라는 아무데서나 쑥을 뜯지 않는다

농약을 많이 치는 과수원이나 논밭 주변에서는 뜯지 않는다

쑥은 중금속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 주변에서도 뜯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산속 오솔길이나 강가 제방에서 주로  뜯는다

그리고 데쳐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쑥 인절미를 해서 먹는다

인절미는 시금자 고물을 입혀서 냉장고에 두고 먹는데 우리집 비상식량이기도 하다

마누라가 아프거나 고단해서  밥을 하기 싫을때 밥 대신 꺼내 먹는다

요즈음 갑자기 남북 관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올해는 쑥을 더  뜯어서 비상식량으로 많이 비축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쑥떡을 해서 지하실로 내려갈 것이다 

지하실에서 100일간 쑥떡만 먹고 나오면 내가 곰이 될까 신선이 될까 전설도 시험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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