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에게 기특한 것이 있다
살다보면 소소한 일들이 많은데 그런것들 중에서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할때 요술처럼 꺼내 놓는 능력이다
더워서 입맛이 없다고 하니 점심에 염적무를 반찬으로 내놨다
오래전에 맛있게 먹어본 음식이 무엇이냐고 마누라가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염적무라고 대답을 했다
마누라가 해준 음식일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겠지만 얼토당토한 염적무라는 말에 마누라는 깜짝 놀라는 눈치이었다
마누라는 염적무가 무엇인도 몰랐다
마누라뿐만 아니라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염적무라는 말 자체를 들어 보지 못했다
염적무는 군대용어다
무를 통으로 짜게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짠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김치의 역사가 길고 종류가 다양해서 그런지 김치와 짠지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반대의 개념으로 사용해서 혼동이 되기 쉬운 말이다
혼동을 막기 위해서 그랬는지 군대에서는 여름철 혹서기에 먹는 짠지를 염적무라고 한다
어머니는 어려서 부터 내가 입이 짧다고 걱정하며 키웠다
중학교에 가기전 까지는 남의집 음식을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잔치집에 데려가도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고 굶었다고 한다
먹는 양도 적고 아무거나 먹지도 않아서 허약하게 자랐다
군대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훈련소에서 냄새나는 보리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굶고 살았다
옆에 있는 고향후배에게 밥을 다 퍼주고 나는 px에서 파는 토너츠만 먹고 살았다
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도착한 것은 8월이었다
식사는 염적무국에 염적무 몇조각이 반찬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반찬이었다
염적무는 무를 소금에 절여서 아무맛도 없는 김치다
양념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맹물에 담구어 간기만 빼고 먹는다
염적무국과 염적무 반찬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제일 맛있게 먹은 식사다
찝찔한 맛이지만 오랫동안 숙성된 발효취가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더 먹고 싶어서 식기를 들고 배식구에 가서 염적무를 달라고 했더니 취사병이 국자로 내 머리를 후려치며 대기병이 건방지다고 호통만 쳤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음식을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처음해본 말에 봉변까지 당한 염적무다
염적무는 시장에서도 팔지 않아서 직접 담아 먹었다
몇해전 담근 염적무도 이제 다 먹었다고 한다
마누라도 아들도 염적무를 좋아하지 않아 나만 먹는다
절인 무를 썰어서 맹물에 담는 것이 전부이니 하기는 쉽지만 성의가 없어 보여서 마누라가 싫어하는 반찬이다
비슷한 반찬이지만 다꾸앙은 먹지 않는다
발효를 하지 않고 가미를 해서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오늘 점심은 염적무로 잘 먹었다
별난 식성인지, 별난 추억인지는 몰라도 더운 여름에는 염적무가 최고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촉(觸) (0) | 2017.08.01 |
---|---|
과유불급(過猶不及) (0) | 2017.07.31 |
시켜서는 못하는 일 (0) | 2017.07.27 |
독일병정 (0) | 2017.07.23 |
추억이 있는 소품 (0) | 2017.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