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올 추석에도 송편을 빚자고 한다
송편을 빚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에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마누라는 송편을 못빚는다
평양에서 피난온 부모 밑에서 자란 마누라는 송편을 제대로 빚어 보지 못한채 시집을 왔다
송편을 빚기는 했는데 손바닥에 둥근 피를 펴고 속을 올리고 그대로 움켜쥐어서 만드는 평양식 송편이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뭉쳐 놓은것 같은 모양이 평양송편이다
나는 송편을 잘 빚는다
한입에 먹기 좋게 작은 송편을 빚는다
도톰하게 배를 부풀리고 끝도 매끈하게 마무리해서 누가 봐도 탄복할 만큼 예쁜 송편이다
마누라는 내가 빚은 송편을 보고 예쁜딸 낳는 것을 소원했다
그러나 나는 추석명절 증후군 환자다
젊은 며느리들이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을 끔찍이도 힘들어 해서 생긴 병이 명절증후군이다
명절이라고 하면 즐겁고 기쁜날이지만 한국의 명절 문화는 여자들에게는 가혹하다
차례를 지내는 음식 가지수가 많고 모이는 식구가 많다 보니 따르는 일들이 여자들 몫이고 피할 수 없는 고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맛이 없는 야채류 재료를 많이 쓴다는 점이다
맛이 없는 재료로 맛을 내려니 향신료를 많이 쓰고 손질과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다
송편도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멀쩡한 팔에 깁스를 하고라도 명절에는 친정에 안가려는 명절증후군이 생겼다
우리집은 전통적으로 딸이 귀하다
나의 칠남매도 고명딸로 누님이 한분만 계시고 아들만 육형제다
누님은 내가 네살때 시집을 갔으니 어머니를 빼고는 모두 남자만 살았다
추석이 되면 모두 바쁜 남자들이라 송편을 빚을 사람이 없다
추석 전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에는 한말도 넘는 쌀가루 반죽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막내아들인 내가 아니면 송편을 빚을 사람이 없다
낮에는 혼자 앉아서 송편을 빚고 밤에는 식구들 모두 달려들어서 빚어도 이슥해야 끝이 났다
친구들이 새옷을 입고 놀러 가자고 불러도 못나갔다
친척들이 찾아와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오로지 송편 빚는 노동에 혹사 당한 추석전야이다
많은 세월 꼼짝없이 마루에 붙들려 앉아서 송편을 빚는 노동에 시달린 결과가 내가 빚는 예쁜 송편이다
지금은 한됫박 흉내만 내는 송편 빚기다
예전에는 식구도 많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 때문에 한말 정도는 해야 했던 시절이라 송편 빚는 일은 고역중의 고역이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딸을 낳는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힘든 일이지만 참고 예쁘게 만들라는 장려의 뜻이 숨어있을 것이다
내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딸을 낳을까 삼신햘매도 걱정했나 보다
그렇게 소원을 했는데 아들만 둘을 낳았다
딸이 없으니 손녀라도 기대를 했는데 손자가 태어났다
둘째는 손녀려니 기대했는데 또 아들이다
올 송편은 발로 문질러서 아무렇게나 빚자
못생겨도 좋으니 다음에는 손녀딸 하나만 보게 해달라고 소원도 빌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