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제눈에 안경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0. 17. 06:25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생체리듬이 새벽 4시면 일어나도록 조화를 부려서 새벽잠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나도 원래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던 잠꾸러기이었다.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 중에서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이 새벽잠을 못자는 생리현상이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신문대신 컴퓨터에서 뉴스나 관심사를 알아 보고 블로그에 일기도 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늦잠을 자는 아내 때문에 불도 켜지 못하고 발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히 거실로 나왔다. 길갓집이고 도로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거실은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어 보름달밤처럼 훤하다

 

매일하던 버릇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안경을 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컴퓨터 글씨가 잘 안보인다. 경미하지만 당뇨증세가 있어서 갑자기 당수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갈때 시력이 저하되기는 했었다.

 

당을 체크했더니 정상이다. 안과에서 백내장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악화된것은 아닌지도 걱정이 되었다. 노인질환 중에는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시력의 저하가 전조인 질병이 많다

 

컴퓨터를 보고 싶어도 어지럽게 글자가 겹쳐보여서 도저히 자료를 읽을 수가 없다.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보리라 마음을 먹고 소파에 누웠는데 아내가 일어났다. 갑자기 눈이 흐리고 어지럽다고 하니 아내가 놀라서 당장 병원 응급실로 가자고 서두른다

 

서두르면 되는 일이 없다. 아내가 당황해서 그런지 잠이 덜 깼는지 안경을 못 찾고 옷도 못 꺼낸다. 아내도 나도 안경을 쓴다. 나는 사십이 넘어서 컴퓨터를 배울때 시력이 나빠졌고 아내는 훨씬 전 부터 근시로 안경을 썼다

 

어지럽고 눈이 아픈 나와 안경을 못찾아 앞이 잘 안 보이는 아내가 집안을 구석 구석 뒤져도 아내 안경은 없다

 

할 수 없이 여행갈때 쓰는 썬그라스를 끼고 아내가 옷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 어지럽다는 내 얼굴을 들여다 보는 순간 마누라가 깜짝 놀라며 배를 잡고 웃는다. 내가 쓰고 있던 안경은 아내 안경이었다

 

어젯밤 내가 일찍 잠든 후에 아내가 컴퓨터를 보다가 안경을 내 책상위에 둔 모양이다. 아내가 안경을 찾았고, 나는 내 안경을 찾아서 쓰니 세상이 똑바로 보이고 어지러움증도 사라졌다

 

제눈에 안경이라는 말은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을 어떠한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천사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하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무슨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천국이 보이기도 하고 지옥이 보이기도 한다. 안경을 잘못쓰고 세상을 보면 아무것도 볼 수없고 혼미하기만 하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백성들의 아픔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선과 악도 구분할 수 없는 진흙탕이 되었다. 제눈에 맞는 안경을 쓰고 있는지 남의 안경을 쓰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화해와 용서가 보이는 안경을 찾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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