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살다보면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0. 19. 05:41


꽃이 피었다

이름도 모르고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는데 오늘에서야 숨어있던 꽃을 보았다

다육식물이라 베란다 구석에 심어두고 잊었는데 수줍게 혼자 꽃이 핀 것이다

여름에 유치원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간 자리에 화단에서 잘라온 다육식물이 버려있었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지만 생명을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주워서 집에 가져왔다

다육식물이라 하루를 말려서 조그만 화분에 꺽꼿이로 심은 것이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운다

식물의 생리에 대해서 조금은 아는 편이라 내손에 들어온 식물은 병이 들거나 죽지는 않는다

식물은 잘 키우는데 꽃을 피우는 재주는 없다

집이 북향집이라 해를 보지 못하는 조건에서 식물을 키우는 탓이다

꽃을 보기 어렵다는 다육식물이 보살핌도 없이 꽃을 피우니 반갑고 기쁘다

살다보면 좋은날도 있고 나쁜날도 있다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면 누군들 명예와 부를 마다하고 힘들게 고생하며 살겠는가? 

평온한 인생의 가을을 맞기 까지 순탄하고 쉽지는 않게 살았다

어려움을 이기고 시련을 견디고나면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나도 모르게 숙명론자가 된다

타고난 운명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구를 탓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원망한다고 되돌려지는 일도 아닌것이 숙명이다

오늘 오랫만에 가슴이 먹먹하도록 감동적인 뉴스를 접했다

얼마전 전방에서 사격장 유탄으로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군대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안전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떠한 위로나 보상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다

그런데 이번 사고의 피해자 아버지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픔을 숙명으로 받아들인것 같다

사고의 원인과 대처가 원만하지 못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상태에서 가해병사를 찾는 조사를 하지 말라고 스스로 사고를 수습하였다

훈련중 오발에 의한 실수라고 해도 자식을 죽인 병사에 대한 용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상규명, 가해차 처벌, 보상과 같은 말이 필요 없어진 아버지의 용서는 참으로 울림이 큰 감동이다

아들의 죽음을 숙명과 용서로 수습한 아버지의 마음에 감동한 모기업에서 위로성금 거액을 기부했다는 뉴스가 오늘 보도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모범답안을 보는것 같아서 마음이 흐믓하다

해묵은 사건, 사고를 두고 피해 당사자와 정치권, 사회단체가 뒤엉켜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호들갑을 떠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바보같은 결정을 한 아버지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죽음 조차도 돈과 정치적 목적으로 흥정하는 세태에서 아버지의 용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뉴스이다

살다보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많고 득보다는 실을 참으며 살아야 할 때가 많다

꽃을 피우려고 노력해도 안피는데 저절로 피는 꽃도 있다

우리집은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

첫손자가 태어나던 날은 집 앞 화분에서 소담한 연꽃이 피어 백일동안 피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오고 사진에 담아가던 명물이었다

요즈음 노총각 아들이 멋을 내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있는 동안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수시로 문자질이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동티라도 날까봐서 애써 참고있다

좋은 소식이 있을것 같다 

아들의 죽음을 용서한 아버지가 씨알이 되어 세상에도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산화  (0) 2017.10.23
조요경(照妖鏡)  (0) 2017.10.20
제눈에 안경  (0) 2017.10.17
孝不孝(효불효)  (0) 2017.10.16
여권사진  (0) 20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