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조요경(照妖鏡)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0. 20. 05:50

 블로그 개설일 2016년 12월 17일,   개설일로 부터 306일차,  생원일기 200회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주차장이 꽉 찼다. 초등학교는 교직원이나 방문객 대부분이 여자인 탓에 차가 많으면 운전이 서툴러 주차가 문제다. 조금 남은 빈자리를 찾아서 전면이든 후면이든 어렵게 주차를 하는데 보는 사람이 위태위태하다.

 

유독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차가 있어서 도와주려고 갔더니 나이 많은 할머니다. 대신 주차를 해주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후면으로 주차를 하려고 백미러를 보니 미러가 접혀있다. 할머니에게 백미러를 접고 어떻게 운전을 했느냐고 물으니 운전을 할 때 왜 백미러를 보느냐고 반문을 한다. 백미러를 차 안에서 화장을 할 때 쓰는 거울로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운전을 했지만 한 번도 백미러를 보지 않았고 지금까지 무사고 운전자라고 자랑까지 한다

 

거울은 여자의 필수품이다. 여자가 사는 방에는 거울이 놓여 있고 틈만 나면 그 거울에 얼굴을 파묻는다. 현대적인 유리거울이 나오기 전에도 돌이나 금속으로 거울을 만들어 썼으니 거울의 역사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자의 애장품인 거울에 대하여 관습적으로 곱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울을 간사하고 악하다는 요물(妖物)로 본 것이다.

 

거울이 꿈에서 보이면 흉몽인 경우가 많다. 거울이 깨지면 나쁜 일의 전조로 여긴다. 거울이 깨졌다는 파경(破鏡)은 이혼을 뜻한다. 깨지기 쉽고 불운의 싹이 된다는 터부가 많기 때문이다.

 

거울에 대해서 금기가 많고 터부가 많은 것은 중국의 영향이다. 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초기에 동남아를 갔었다. 첫 번째 해외여행 동남아 현지 모습은 원시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차이나타운이었다.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건물의 대문에 조요경이라는 거울이 달려있었다. 중국 사람들의 토속신앙은 신선을 숭배하고 귀신인 요괴를 무서워하는 도교가 근간이다. 요괴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거울에 얼굴을 비추면 흉측한 본래의 모습이 보인다는 귀신이다. 그래서 집 대문 앞에 조요경을 달아 놓으면 요괴가 제모습을 보고 놀라서 들어오지 못한다

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그러한 토속신앙을 믿기 때문에 거울을 보지 않는다. 대문에 걸어두는 조요경 말고는 집안에 거울도 두지 않는다. 집안에 거울이 있으면 요괴가 들어온다는 속설과 혹시라도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다가 귀신 얼굴이 비칠까 두려워서이다. 심지어 자동차를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백미러와 룸미러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거리의 자동차 중에서 백미러가 없는 차가 많아서 관광객들에게는 흥미 있는 구경거리이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거울을 보지 않아서 머리가 텁수룩하고 옷입는 맵시가 나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믿음처럼 조요경이 효험이 있는 액막이라면 꼭 필요한 곳은 따로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은 중세 유럽 귀족 사회 화려함의 상징이지만 마리 앙뚜아네트 왕비가 단두대에서 혁명군에게 처형을 당하게 만든 비극의 방이다. 청와대에 있었다는 거울의 방도 촛불혁명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 되는 비극을 잉태한 방이다. 요괴가 들어온다는 거울로 방 전체를 꾸몄으니 간신과 아첨꾼이 날뛰고 들끓었음이 틀림없다. 거울의 방이 아니라 왕궁과 청와대 정문에 조요경을 달았더라면 간신과 아첨꾼이 놀라서 달아났을 것이고 세계사도 한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자동차 백미러도 거울로 쓰고 싶은 여자의 거울 집착은 한이 없다. 거울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면서 그것이 자기 얼굴이기를 바라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을 것이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자기표현이고 나쁠 것은 없다. 지나침이 문제다

 

조요경이 막으려는 요괴는 바로 나다. 마음을 다스리는 조요경을 품고 있으면 요괴가 함부로 들지 못한다. 거울도 보지 말아야 한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분칠하고 싶고, 분칠이 과하면 요괴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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