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막둥이

재정이 할아버지 2017. 2. 28. 21:02

나이가 들면서 나는 숙명론자가 되었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안되는 일은 역시 안되고 되는 일은 내버려 두어도 되더라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나는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는 귀엽게 자라서 버릇이 없고 의타심이 많다고 이야기를 한다

맞는 말이지만 막내도 막내 나름이다

서열상 맨 꼬래비라서 가정사에 결정권은 없고 시키는 일만 하면서 성장했다

거기에다 장형의 아들인 조카가 네살 아래이어서 보통의 막내들이 누리는 귀여움이나 응석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형에게 눌리고 조카에 치받치는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도 내가 철이들 즈음에 비로소 나에게 실토한 말은 태어날 때는 며느리를 볼 나이에 자식을 낳았으니 부끄러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조카가 생기니 조카를 안아주면 안아 주었지 막내 아들인 나를 안아 주기가 쉽지 않더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내가 어머니를 따르지 않아 속이 상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직장생활도 그랬다

우리나라 담배산업은 70년대가 최성기이었다

사업 확장기에 막내로 전매청에 입사한 후 줄곳 사업축소의 과정에서 인원과 기구의 감축만 있었지 후배 한명 들어오지 않는 공무원 생활을 14년이나 했다

공무원 막내로 전매청이 공사로 전환되자 신입사원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채용과정이나 인력관리가 공무원과는 사뭇 달랐다

공사 초창기 부터 공무원 출신 사원은 청산의 대상이 되어 회사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대졸 신입사원이라는 공사 이후 입사 직원은 미래의 인적자원으로 관리되어  확연히 다른 관리를 하여 틈새에 끼인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선배들에게는 궂은 일을 시키기에 만만한 막내고 후배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관료주의자인 셈이었다

퇴직자들의 모임에서도 공무원 출신들만 모이니 자연스럽게 막내역할만 한다

다른 모임에서도 이상하리만큼 모임의 막내가 대부분이다

막내가 좋은 것은 형이나 선배들이 먼저 가는 길을 유심히 지켜보며 좋은 것은 택하고 나쁜것은 버리니 실수하는 일이 적어지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막내가 호강하는 가족제도를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발리가 그곳이다

발리는 발리힌두라는 독특한 종교로 사회가 구성되었는데 마을 단위로 집단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발리는 자식이 결혼을 하면 부모가 유산으로 집과 땅을 사주고 독립을 시킨다

그리고 막내는 부모가 죽을 때 까지 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남은 재산을 차지한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과거 우리나라 가족제도는 장남독식 유산제도이어서 장남의 횡포에 많은 가정이 파탄되고 불화가 심했다

유산만이 아니라 늙은 시부모가 늙은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실때 까지 함께 살았는데 큰며느리가 환갑이 넘으니 서로가 불편하여 차라리 어린 막내 며느리하고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살게 되었다

내일 부터 학교에 나가 꿈나무 지키미 일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도  역시 내가 막내다

차라리 발리에서 태어났으면 좋은 팔자인데 한국에서 태어나 기를 펴고 살기는 틀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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