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박새

재정이 할아버지 2017. 2. 26. 19:30

박새가 돌아 왔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집 창문에서 빤히 내다 보이는 전봇대 구멍에 집을 짓고 사는 귀여운 새이다

박새는 우리나라 텃새를 대표하는 아주 작은 새다

검은 바탕에 흰 무늬가 예쁘게 입혀져서 귀엽다

박새는 사람과 친근한 새다.

산간오지에 사는 사람들이 손에 먹이를 쥐고 새를 부르면 손바닥에 내려 앉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는 새다

동전보다 조금 큰 전봇대 구멍으로 암수 한쌍이 열심히 솜털이며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한겨울을 어디서 보내는지 잘 보이지 않다가 봄이 되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여름내내 새끼를 기르고 가을 부터는 보이지 않는 새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내가 학교를 다녀와서 제일 재미있게 놀던 놀이는 새를 잡으러 산을 돌아 다니고 물고기를 잡으러 냇가를 쑤시고 다니던 일이다

나는 새와 물고기를 남들 보다 잘 잡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새와 물고기의 습성을 관찰하는 능력이 남달랐던것 같다

산에서 새가 우는 소리나 몸짓을 보고 새집이 있는 곳을 찾아내고 알을 꺼내 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서 고사리를 꺽으러 산에 갔다가 새집을 찾아 마누라에게 보여 주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물로도 못잡는 커다란 메기를 맨손으로 잡아서 집으로 가져가 반찬으로 해먹기도 했다

냇가에 끼룩 끼룩 울며 날아다니는 물떼새의 알은 자갈밭에 낳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메추리 알 크기의 물떼새 알을 한줌씩 주워 대파 속에 넣어 구워 먹기도 했다

겨울은 새잡기의 계절이다

참새는 초가지붕 추녀 구멍을 알아 두었다가 저녁에 잠자러 들어간 새를 꺼내 오기도 하고 박새는 집 주변 오래된 나무 구멍에서 잡았다

나무 구멍 속으로 손을 넣었을때 따듯하게 잡히는 박새의 감촉은 잊을 수가 없다

겨울에 잡는 새는 구워 먹는다

쇠죽을 끓이는 사랑방 아궁이에 잡아온 박새를 털째로 묻어두면 새털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얼마쯤 있다가 꺼내면 새까맣게 타버린 새가 나온다

털이 타서 엉겨붙은 새까만 거죽을 벗기면 나오는 작은 새의 속살, 지금 처럼 군것질 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창문 밖에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나르는 박새를 바라보면 그동안 내손에 죽은 박새들에게  미안함이 찾아 든다.

그래서 옥상에 새 모이로 여러가지 곡식을 그릇에 담아 놓아 보았지만 새들이 모이를 먹지 않는다

새집도 만들어 주었지만 새들이 깃들지를 않는다

이제는 새알도 새도 귀중한 생명이라고 보살피고 싶은데 과거의 전과가 새들의 유전자에 인식이라도 된것인지 내가 주는 모이나 새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미안한 박새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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