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부조리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16. 05:41

볼일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접수대 앞에 친구가 앉아 있었다

반가워서 친구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가까이 가도 쳐다보지를 않는다

사람을 잘못 본것 같아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분명히 친구가 맞는데 아는체를 하지 않는다

나에게 오해가 될 일도 없었고 만나면  반가워서 활짝 웃던 친구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어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 부인이 나섰다

친구가 알츠하이머라는 고약한 병에 걸려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급성으로 알츠하이머 증상이 와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숨쉬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퇴행성 뇌질환이라 마땅히 치료방법이 없어서 주기적으로 병원진료나 받아 보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친구다

농사짓는 아버지를 돕느라고 학교를 다닐때에도 친구들과 마음 놓고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

군대에서 배운 중장비 기술로 토건업을 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극진한 효자이었던 친구는 아버지가 아버지 친구의 빚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도장을 찍었다가 하루 아침에 전재산을 날렸다

형제가 많았지만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효자인 친구에게 보증을 부탁해서 그렇게 된것이다

젊은날의 실패를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사업에 시작하여 어느 정도 사업이 자리를 잡아갈때 이번에는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부도를 맞아 또 다시 쓰러졌다

아버지와 친구 때문에 두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나서 친구는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택시운전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어 왔었다

사느라고 얼마나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이런 몹쓸병에 걸린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열심히 살았으면 잘 살아야 되는데,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면 복을 받아야 하느데, 친구들과 더불어 살았으면 덕이 있어야 하는데 친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제는 몸마저 성하지 못하니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부조리라고 한다

부지런한 농부가 봄 부터 열심히 나무를  가꾸어서 사과가 실하게 많이 열렸다

게으른 농부는 나무를 가꾸지 않아서 사과가 부실하고 많이 열리지도 않앗다

그런데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치자 부지런히 농사 지은 농부의 나무는 과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부러지고, 쓰러지고 쑥대밭이 되었다

게으른 농부의 나무는 과일도 나무도 멀쩡해서  피해를 하나도 입지 않앗다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다는 부조리를 설명할때 많이 인용되는 사례이다

접수를 마치고 친구가 부인의 손에 이끌려 진료를 받으러 가는 뒷모습을 보니 사람이 산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친구가 진료를 받기 위해서 떠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굴이나 팔다리는 말짱하여 친구 모습 그대로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어린아이 처럼 부인 손에 끌려 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리다

아버지 말을 안듣고, 친구에게 모질게 살았으면 친구가 저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도 아닌것 같다

사람의 삶은 죽는다는것 말고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고 운명을 이길 수도 없다는 오래전 읽은 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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