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묵언(默言)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24. 05:19

마누라와 묵언에 들어갔다

일이 생각대로 안될때, 사소한 시비거리로 일이 꼬일때에 나와 마누라는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묵언을 한다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이 오만원 벌금을 내야 하는 규칙도 있다

일상에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소한 말 한마디가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은 허다하다

말 한마디로 입은 상처는 아무리 다투고 따져도 결국은 아무에게도 득이 없는 제로섬 게임으로 끝난다

말을 하지 않고 지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일이 말로 하기다

말로는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고 돈 한푼 안들이고 마누라 세계일주 여행도 시켜준다

쉽다보니 가볍게 뱉아 놓은 말이 가시가 되어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설교만 잘하는 목사가 예수가 될 수 없고 염불만 잘하는 스님이 석가가 될 수 없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이나 글은 독이든 기교다

말을 잘하는 방법은 말을 가급적 안하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나는 마누라와 다툼도 잦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주례사로 배삼룡을 꼽았다

결혼식에서 주례사가 빠질 수는 없지만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통과의례다

배삼룡은 주례사를 시작하면서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부르고 "너희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지?"라고 물었다

신랑과 신부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배삼룡은 "그렇게 살면 된다"라고 말하고 주례사를 끝냈다

말을 하지 않고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주례사이었다

묵언은 말 대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묵언은 마누라하고 말로 싸우면 손해라 내가 먼저 제안했다

마누라는 말을 잘한다

마누라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는 말을 잘한다

몇시간을 떠들어도 지치지 않고 계속 말을 한다

여자가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은 조물주가 아기 양육을 위해서 그렇게 유전자를 심어 놓아서 그렇다

어미가 새끼에게 아무말도 안하면 말을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어미가 새끼를 안고 있는 동안 하루 종일 아기와 말을 하는 것은 본능이다

유전적으로 그런 형질을 타고 난 여자와 말싸움을 하는 남자는 바보다

내방에서 천정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는데 마누라 비명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에서 마누라가 벌벌 떨며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커다란 바퀴벌레가 있으니 잡으라는 것이다

나는 슬리퍼로 바퀴벌레를 때려 잡았다

마누라가 먼저 말을 했으니 5만원을 주었다

나는 오만원을 받고 바퀴벌레를 화장지에 싸서 버렸다

우리가 왜 묵언을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만원을 벌어서 기분이 좋고 마누라는 바퀴벌레를 잡아준 내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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