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산비둘기의 이소(離巢)

재정이 할아버지 2017. 6. 28. 05:55

산비둘기 새끼가 둥지에서 떠날 준비로  바쁘다

어미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한달 전에 알았는데 그 사이에 부화하고 어미만큼 자라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저 미물이라고 생각하고 주말농장의 씨앗을 훔쳐먹는 나쁜새라고 미워했던 산비둘기다

그러나 우리집 창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과정을 지켜본 이후 자연이 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여기는 산비둘기가 되었다

집을 짓는 과정과 포란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암수의 역할구분이 분명하다

숫컷은 둥지의 재료를 물어 나르고 암컷은 둥지를 꾸민다

암컷이 알을 품는 보름 동안 숫컷은 먹이를 물어와 암컷을 먹이고 보살핀다

새끼가 부화하니 어미 비둘기들이 먹이를 물어 나른다

어미 비둘기가 돌아오면 새끼들은 어미 목을 자극해서 토해낸 먹이를 받아 먹는다

부화를 한지 보름 정도 지나자 새끼 비둘기가 어미만큼 자랐고 둥지 옆 나무가지에 앉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시작하듯 나뭇가지에 앉아서 부리로 털을 다름고 날개짓을 시작한다

어미 비둘기가 자주 오지는 않지만 오더라도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가지에 앉아서 새끼를 부른다

새끼들은 먹이를 받아 먹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곡예하듯 타고 오르 내린다

비둘기 둥지에서 새끼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누라와 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도 아들 둘을 키워서 모두 독립 시켰다

비둘기처럼 품어 안아서 키우던 때가 있었고 버릇을 바르게 하려고 야단을 치기도 하고 글을 가르치며 종아리도 때렸다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집을 떠나게 되어 원룸에 이불과 밥솥을 사주고 돌아오던 날 왠지 허전해서 아들 방을 며칠간  열어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어느날 비둘기 새끼가 둥지를 떠나고 나면 아들이 떠난 빈방을 바라보던 심정이 될것 같다

오늘도 비둘기 새끼 두마리는 둥지옆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리집 거실만 바라보고 있다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내년에도 좋은 짝 만나서 다시 오거라

한달간 산비둘기가 밤에 편하게 잠을 자라고 우리는 거실에 불도 켜지않고 살았다

우리집 그늘에 찾아와서 생명을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고맙고 행복했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온국  (0) 2017.06.30
사탕봉지  (0) 2017.06.29
효자손  (0) 2017.06.27
감자 캐는 날  (0) 2017.06.26
작은 음악회  (0) 2017.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