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말귀

재정이 할아버지 2017. 7. 3. 06:00

공원에서 이웃집 할머니를 만났다

작은 식당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식당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넘겨주려고 하고 있었다

아들은 착하기는 하지만 총기가 조금 모자라는 젊은이이고 며느리는 미얀마 출신의 외국 여자였다

할머니 식당은 장맛이 좋아 점심시간이면 청국장 백반을 먹으러 멀리서도 찾아오는 대전시내 유명 맛집이다

할머니가 나를 만나면 말귀를 못알아 듣는 며느리가 답답하다며 푸념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다문화 가정이 겪는 문제이다

외국인 며느리가 시집온지가 10년이 되어간다

손자, 손녀를 낳아 유치원에 보내고 있으니 할머니로써는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우리나라 말도 쓰지는 못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가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장도 본다

그런데 식당을 맡기려고 하니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청국장,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그는 방법을 가르치려니 한국사람도 어려운 미묘한 맛의 차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려서 부터 먹고 자란 한국사람에게는 된장, 고추장, 간장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혀와 말로 표현이 가능하지만 외국인 며느리는 모두가 짜다라는 말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외국여행을 많이 다니고 외국인도 한국에 와서 많이 살다보니 필수적으로 영어 몇 마디는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영어라는 것이 단어 몇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일도 있다

지금 유럽에서는 번지점프를 하다 사망한 소녀의 재판이 화제다

네델란드 소녀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일어난 사고다

우리나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있고 전라도 사투리가 있어 발음과 억양이 다르듯 나라마다 영어의 발음이 다를 수 있다

번지점프대에 올라간 소녀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에서 뛰어 내리지 말라는 안전요원의 "no jump!"를 뛰어 내리라는 "now jump!"로 알아 듣고 뛰어내려 사망한 사고디

전후 사정과 몸짓, 눈빛을 보지 않고 단순히 소리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표현이라  no라고 말했다는 안전요원의 주장과 now라고 들렸다는 소녀친구의 증언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재판의 결과가 흥미거리가 된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닐때 대전역에서 외국인이 나에게 개그린차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난생 처음 외국인과의 대화인데 그 외국인은 한국말을 조금은 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개그린차가 도대체 무슨 영어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외국인이 종이에 개가 그려진 버스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고속버스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그레이하운드라는 고속버스에 개가 그려져있어서 그레이하운드를 말하느냐고 하니까 맞다고 했다

"개 그린 차"라고 한국식으로 말을  했으면 쉽게 알아들었는데 외국인이 개그린차라고 발음을 하니 영어 같아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며느리가 말귀를 못알아 들어서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는 할머니 푸념이 길어졌다

할머니 말을 듣고 있는데 마누라가 성질을 내며 내려왔다

창문을 열고 밥먹으라고 소리를 질러도 쳐다보지도 않으니 벌써 그렇게 말귀가 어둡냐고 씩씩거린다

말귀는 말의 이해도를 말한다

마누라가 소리를 질러도 못알아 듣는 것은 귀가 어두운 것이다

눈도 나쁘고 귀도 어둡고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봐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살라는 조물주의 조화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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