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장마의 추억

재정이 할아버지 2017. 7. 4. 06:31

장마가 시작되었다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가뭄끝이라 장마가 반갑다

창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하룻밤 사이에 푸르름이 더해진 숲을 보니 역시 생명의 근원은 물과 햇빛과 흙이라는 생각이다

장마는 여름이 시작되면 반드시 거쳐가는 우리나라 기후의 특징이다

지금부터 한달 가까이 햇빛이 그리울 정도로 흐리고 비오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후텁지근하고 습도도 높아서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장마는 나에게 문신과 같은 추억이 있다

나는 6월 24일 육군에 입대를 했다

입대하는 날 장마가 시작되어 억수같이 많은 비가 내렸다

37사단 신병교육대로 가기 위해서 대전에서 증평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차창에는 굵은 빗줄기가 흘러내렸고 라디오에서는 박상규의 노래 조약돌이 왜 그리 구슬펐는지 지금도 아련하다

증평역에 입대장정들이 모여서 부대까지 빗속을 달려서 갔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온몸이 흠뻑 젖은채 입소하여 고단한 훈련병의 여정은 장마와 함께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해가 나면 땀에 젖어서 군복은 마를날이 없었다

훈련복은 진흙밭에서 뛰고 굴러서 가죽옷처럼 무겁고 뻤뻤했다

해가 나서 군복이 마르면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앞에 있는 전우의 등에는 진흙과 소금끼 있는 땀이 말라 파카소의 추상화 같은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지금 군대와 같이 샤워시설이 있지도 않았기에 훈련이 끝나면 개울가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몇번 하면 샤워와 세탁은 동시에 끝났다

삼십분 넘게 걸어가는 야외교장 까지 판쵸우의를 둘러쓰고 부르던 군가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야외교장에 가면 오후에 이동 PX가 왔다

밀가루 반죽을 튀겨서 만든 도너츠를 팔았는데 100원을 내면 네개를 주었다

100원짜리 쿠폰을 주면 트럭 안에서 철모에 던져주던 도너츠맛은 기가 막혔다

도너츠 네개를 받아들면 돈이 없어서 못사먹는 전우들에게 두개는 빼앗겼다

천막을 치고 야영훈련을 할때는 매트리스가 흠씬 젖었지만 누우면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나면 아침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물침대인 셈인데 천막생활은 사흘을 가지 못했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식중독환자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배탈환자가 의무실로 실려나갔다

그래서 한동안 부식이 염장배추만 나왔지만 원래 급식이 부실했던 터라 불편함은 없었다

야외에서 식사를 할때는 머리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식판에 떨어져 먹어도 먹어도 국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많아졌다

1975년 장마다

장마철이 되면 무거운 M1소총을 메고 판쵸우의를 입고 빗속을  걸어가며 부르던 군가가 들려온다

전우야 잘 잤느냐.  어젯밤 꿈속에서 부모님이 하신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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