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이른 아침에 주말농장에 잠깐 다녀오는것 말고는 대문 밖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걸레질만 해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햇볕에 나서면 현기증이 올라와 움직이는것 자체가 두렵다
직장에 다닐때에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름에 휴가를 다녔다
바닷가 민박집을 빌려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고 인근에 있는 계곡에 텐트를 치고 며칠씩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해마다 형편이 되는대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휴가를 보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때 부터 대학을 졸업할때 까지 함께 다녔으니 추억도 많고 할말도 많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부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휴가를 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휴가를 못간지도 꽤 오래다
휴가는 일하는 사람들의 특권이지 은퇴한 백수에게는 헛말이다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맞다
휴가를 못가니 그동안 다녔던 휴가 이야기를 마누라가 자주 꺼낸다
최고의 휴가는 클럽 매드의 체라팅을 꼽는다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때이니 아주 오래전이다
봉급쟁이 박봉으로는 해외여행 꿈도 꾸지 못할 때인데 아는 지인이 모든 경비를 대서 따라간 공짜 휴가였다
클럽 매드는 유럽계 휴양전문회사이고 체라팅은 말레이시아 오지에 있다
마누라가 체라팅을 최고의 휴가로 꼽은 이유는 해외여행이기 때문이 아니고 방법이 다른 놀이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는 것이 서툴다
돈에 맞추어 놀다보니 휴가를 가서도 할것이 없다
열심히 휴가를 떠나기는 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하다
고기를 구워먹고, 술을 마시고, 물놀이를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고스톱을 친다
보통사람들의 휴가가 그렇다
클럽 매드는 경비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빌리지에 도착하면 숙식과 놀이시설이 모두 무료다
입촌할때 걸어주는 목걸이만 매고 다니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마음껏 할 수 있다
빌리지의 슬로건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다
나무로 지은 원두막 같은 집에서 자고, 요리사들이 즉석에서 만드는 음식을 먹는다
와인과 맥주도 종류별로 큰통에 담겨져 있어서 꼭지만 틀면 무한정 나온다
빌리지에서 일하는 스탭도 관광객이다
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서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관광객과 재미있게 놀게 한다
거창한 놀이기구나 놀이 시설은 없다
스탭들을 요소 요소에 배치하여 재주도 부리고 관광객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써커스와 마술, 어른들은 운동경기나 춤이 인기가 있었다
낮에 배운 노래와 춤은 밤에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양궁이나 사격은 나라별로 선수를 모집해서 올림픽도 열린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스탭이 해괴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 즉석 이벤트를 벌인다
놀이판에서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는 외모만큼이나 확연하다
서양사람들은 이벤트에서 주연이 되려고 적극 참여하고 동양인은 뒷전에서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서양 부모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공중제비 써커스를 배우라고 하고 동양의 부모는 아이가 써커스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위험해서 안된다고 말리기에 바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재미거리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나게 놀았던 휴가다
마누라는 노래와 춤을 배워서 무대공연을 한것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나는 울창한 밀림에서 아들과 원숭이를 잡으러 다닌것이 제일 즐거웠다
우리는 휴가지에서 혼자 놀지만 클럽 매드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놀게 하는 휴양지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쉬는 것이 좋은 휴가다
이발을 하고 왔더니 마누라가 없다
식탁에 삶은 감자와 옥수수, 라면 한봉지가 소쿠리에 담겨져 있다
소쿠리에는 "우리집 뷔페"라고 쓴 메모지도 붙어있다
생로병사의 끝단에 서니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기가 두렵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지 않고, 언제 오느냐고 재촉하지 않는 우리집이다
일년내내 휴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