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사람으로 태어나서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15. 05:57

TV 채널을 돌리다가 산양 두마리가 격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있는것 조차 불안해 보이는 암벽산 절벽 위다

커다란 뿔을 가진 숫컷 산양 두마리가 머리를 부딪는 소리는 골짜기를 쩌렁거린다

부딪치고는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달려들어 머리를 부딪친다

몇번을 그러다가 힘이 부족한 놈이 뒤를 보이고 달아나면 싸움은 끝난다

싸움에서 이긴 산양은 싸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암컷에게로 간다

야생에서 번식기에 암컷을 두고 벌어지는 숫컷들의 짝짓기 싸움이다

산양처럼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는 동물도 있지만 노래를 부르듯 소리를 질러서 암컷을 부르는 동물도 있다

날개를 부채처럼 펴고 현란하게 춤을 추면서 암컷을 유혹하는 새도 있다

동물들은 오종종한 암컷에 비해서 숫컷은 늠름하고 화려하다

건강한 우성 유전자로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조화다

동물들이 암컷에게 치열하게 구애하는 모습을 보던 마누라가 나를 흘끔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꾼다 

마누라는 제발로 걸어와서 나와 결혼한 경우다

싸움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추는  무녀리인 나와 사는것에 대하여 지금은 몹시 억울해 한다

미끼도 없는 바늘에 낚인 꼴이니 더욱 분하다는 것이다 

삐쩍 말라서 불쌍해 보였단다

까칠한 성깔은 귀품으로 보였단다

선무당 푸닥거리 소리같은 편지를 지성으로 알았단다

하나도 쓰잘데기 없는 것들로 왜 눈이 멀었는지 인연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는 마누라다

눈을 뜨고 살아보니 삐쩍 말라서 병치레나 하고, 성깔이 더러워서 마누라 보듬지도 못하고, 책 좀 읽었다고 독불장군이라 나와 살아온 세월이 지겹다고 한숨이다

숫컷으로는 젬병이라고 했다

동물로 태어났다면 암컷 근처에도 못가고 늑대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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