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시사만평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18. 06:23

한컷짜리 시사만평을 보고 무릎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시사만평이다

한컷, 많아봐야 네컷짜리 시사만평을 보면 오늘 세상의 화두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장황한 글과 설명으로도 알 수 없던 화제의 맥을 우스꽝스러운 그림 한장으로 딱부러지게 설명하는 송곳같은 혜안이다

오늘은 여러 언론사 만평이 살충제 계란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곡을 찌른 만평은 "닭은 죄가 없다"라는 제목의 한컷짜리다

깨어진 살충제 계란 더미 앞에서 "사랑도 못 받아 보고...."라고 말하며 서럽게 울고 있는 닭 그림이다

그림도 재미있고 내용도 풍자적이서 웃음부터 나는 만평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살충제 계란사태 전체를 이처럼 통렬하게 짚어낸 표현도 흔치 않다

닭은 죄가 없다라는 제목은 죄가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전제다

작가는 정부에게 죄를 묻고 싶어 하는것 같다

닭이 말하는 사랑도 못받아 본 주체는 닭 자신과 계란이다

알을 낳는 닭은 게이지라는 좁은 철망안에서 키운다

겨우 서있을 정도의 가혹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알 낳는 것만 할수 있다

알을 낳아도 수탉 근처에도 못가본 숫처녀 암탉이다

사람에게도 수탉에게도 사랑을 못 받은 암탉의 자탄이 사랑도 못 받아 보고이다

닭은 마당이나 들판에서 풀씨를 찾아 먹고 벌레도 잡아 먹고 흙을 파서 목욕도 하고 수탉을 만나서 사랑을 하며 사는 동물이다

그래야 질병에 저항성이 생기고 진드기도 달라붙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 많은 닭을 키우려고 좁은 새장에서 키워 생긴 사단이라는 뜻이다

계란은 닭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다

수탉의 사랑을 못받았으니 부화는 글러먹은 계란이다

병아리로 태어날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받는 식품이라도 되어야 한다

독이 있어 먹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진 계란을 바라보는 닭이 그래서 슬퍼하는 모습을 그렸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자 정부와 언론은 닭을 키우는 양계장 주인에게 모든 잘못을 몰아가고 있다

작가는 양계장 주인은 죄가 없거나 있어도 큰죄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양계장에서 닭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기를 수 있다

허가의 조건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인정이다

식품의 안전성을 검사하고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을 다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결론이다

유해농약이 생산되고, 판매되고, 사용하는 과정을 통제하는 역할은 정부 몫이기 때문이다

같은 만평으로 다른 추리도 가능하다

국정농단 재판을 받고 있는 박대통령을 세간에서는 닭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탄핵에 대하여 한결같이 죄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대통령 재임기간에 공을 들인 정책과 제도는 정권이 바뀌면서 독이든 계란처럼 하루 아침에 깨어 버렸다

버려진 정책 앞에서 나라와 결혼했다고 했던 그가 국가와 국민에게 버림받은 심정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작가는 단순한 그림과 한마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뜻을 품고 있다

한컷짜리 만평 하나를 놓고 작가의 저의를 추리하고 상상하는 것이 내가 시작하는 아침의 일과다

나도 만평처럼 짧은 글속에 정해진 주제를 담는 글을 쓰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난해한 문제를 간결한 해학과 유머로 풀어볼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어려운 일이다

어제는 학교 텃밭에서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고추가 실하게 잘 컸다고 만져보고 있었다

내가 아주머니들에게 지나가는 여자들이 자꾸 만져서 그렇다고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짧은 글보다는 짧은 말이 내 특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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