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원산도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17. 05:46

대천에 볼일이 있었다

약속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여 잠깐 해수욕장에 들렀다

바다가 좋다

머드축제가 열리는 신광장에서 바라보는 청옥빛 수평선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아침이라 수평선 끝자락에 해무가 깔리고 갈매기가 낮게 날며 나를 반긴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다면 한없이 날아가고 싶은 바다다

바다를 보자 지치고 찌든 몸을 절이고 가자며 마누라가 나를 잡아끈다 

마누라는 바닷물에 몸을 담는것을 절인다고 한다

배추를 절이듯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만성피로나 무좀, 피부병에 특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하는 일이다

탈의장에 가서 짐을 맡기고 편한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평일 아침이라 한여름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바다에 누워 수평선을 바라보니 해무에 가려 윤곽만 드러낸 원산도가 묵화처럼 한요롭게 누워있다

원산도는 고향과 같은 섬이다

군대에서 사고로 몸을 다친 형이 십여년간 경찰로 근무한 섬이다 

처음에는 심부름으로 찾아 갔었다

고기를 잡고 김양식을 하던 순박한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대천과 원산도, 안면도를 육로로 연결하는 해저터널 공사가 한창이라 옛모습과 인심이 사라져 가본지 오래되었다

형이 섬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원산도에서 여름과 겨울방학을 보냈다

친구들도 떼거지로 몰려와서 신혼인 형과 형수가 곤욕을 치루었지만 원산도는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원산도는 백사장이 일품이다

70리가 넘는 하얀  백사장은 유리의 원료인 규사질 모래라 곱기로 유명하다

마시고 몸을 씻는 민물샘이 백사장에 있어서 야영객에게는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남장여자 국회의원이었던 김옥선이 설립한 중학교도 있다

중학교 운동장 앞이 해수욕장이다

김옥선이 섬에 오는 날이면 해수욕장은 일반인 출입금지다

남장여자 거물 국회의원도 해수욕장에서는 비키니를 입을 수 밖에 없고 그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이기 싫어서 라고 했다 

관사가 있는 포구 앞 바다에는 소라와 돌게가 많았다

저녁에 횃불을 들고 바닷가에 나가면 무거워서 들고 오기 힘들만큼 돌게와 소라를 잡았다

군입대 영장을 받아들고 마누라와 입대여행을 한곳도 원산도다

노를 저어가는 전마선을 타고 낚시를 하며 입대전의 착찹한 심경을 달랬다  

사막처럼 넓은 모래언덕 사구를 걸으며 인생의 시련들을 손잡고  함께 헤쳐 나가자고 약속한 섬이다

첫사랑의 추억은 누구나 아름답고 애틋하여 마음속 깊이 감추고 산다

나이가 들어서 첫사랑의 그 사람을 만나면 늙고 찌든 얼굴을 보는 순간 추억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고 한다

원산도도 아름다운 추억을 지키고 싶어서 가지 못하는 섬이다

마누라를 너무 오래 절인것 같다

대천에서 볼일을 보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동안 옆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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