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도둑질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21. 06:15

공관병 갑질 논란 뉴스를 접하면서 나이든 남자들은 군대시절 생각을 많이 했을것 같다

위계로 유지되는 군대조직에서 지휘관을 보필하는 공관병은 특별히 선발된 병사만 갈 수 있는 선망의 보직이다

장군이 아니더라도 일반 하급부대 부대장 집무실과 관사에는 잡일을 도와주는 당번병이 있다

부대장과 항상 함께있는 당번병은 외모도 깔끔해야 하고, 전화도 재치있게 잘 받아야 되고, 눈치 빠르게 심부름도 잘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부대장과 관련된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함구하는 신의다

우리가 군대생활을 하던 70년대 당번병은 그랬다

공관병이 공개적으로 상관에게 불만을 터트렸다는 것은 군대생활을 경험한 남자들에게는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좋게 말하면 군대도 민주화가 그만큼 성숙한 것이다

우리세대의 군대생활은 민주화나 인권은 사치다

매맞고 욕먹는 것은 일상이었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모두 알고 있어도 용인되던 필요악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중대 보급병이었다

하루는 몇개월 선임인 상병이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옆 중대 창고로 식기를 훔치러 가자는 것이다

대대병력이 같은 막사에서 지내다보니 부대생활에서 제일 흔하게 잃어버리는 것이 식기다

식기는 잃어버리면 찾을 길이 없다

다른 중대 식기를 훔쳐다 채워 놓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아무리 간수를 잘해도 식기는 매일 매일 숫자가 다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식기를 잃어버려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참들이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식기를 훔쳐간 것으로 의심되는 옆 중대 식기를 훔쳐오자는 것이다

식기도둑 특공대는 4명이었다

날렵한 침투조 1명과 체격이 좋은 운반조 2명 그리고 나였다

우리중대 보급창고와 연접한 옆 중대 창고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창고 열쇄를 가지고 있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군대지만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발각이 되면 최소한 영창을 가야하는 범죄다

몇개월 선임의 말에도 도둑질이라 못한다고 말 할 수 없는게 당시의 군대문화다

나의 역할은 침투조에게 창고문을 열어주고  옆 창고를 뜯고 들어가서 식기를 훔쳐 내는 동안 밖에서 망을 보는 일이었다

식기를 훔쳐낸 다음에 창고에 남아있는 발자국 같은 흔적을 지우는 것도 내가 할일 이었다

창고 옆 막사 옥상에는 보초병이 있었지만 특공대 4인조는 번개처럼 식기를 훔쳐서 산속에 묻어두고  내려왔다

다음날 아침 옆 중대에서 식기를 잃어버려 식사를 못한다고 보고되자 부대전체가 비상이 결렸다

전병력이 연병장에 집합되고 식기를 잃어버린 옆 중대원들은 부대 전체를 뒤져서 식기를 찾았다

그러나 우리가 감춘 식기는 찾지를 못했고 우리중대도 식기를 잃어버려서 식사가 곤란하다고 맞불을 질렀다

결국 대대장이 식기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식기를 새것으로 보급하여 사태를 종결시켰다

우리 중대원들은 식기 도둑이 누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겁박에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세대의 군대문화다

상병이 도둑질을 하자고 제의했을때 불법이라고 거부하였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장실에 불려가서 아무개가 도둑놈이라고 누가 고자질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모두 추억으로 이야기한다

도둑질을 했어도 도둑놈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이유도 없이 매를 맞고도 때린 사람을 그리워한다

나의 군대시절은 군대라는 이유로 어떠한 잘못도 포용되던 시절이었다

흘러간 세월만큼 군대도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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