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장롱면허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23. 06:10


퇴직자 모임이 있어서 전에 근무하던 직장을 갔다

정문에 선홍색 배롱나무 꽃이 활짝피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는 꽃이 귀한 한여름에 피는 꽃이라 사랑을 받는 정원수다

정문에 있는 배롱나무는 전매청이 공사로 전환할때 공사창립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다

새롭게 출발하는 공사가 오래도록 발전하라는 뜻으로 심을 나무를 정하고 만년홍(萬年紅)이라는 이름까지 내가 붙였디

세월이 흐른만큼 건강하게 자랐고 수형도 잘 잡혀 기품이 있다 

나는 조경기사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다

학교 전공이고 군대에 있을때 휴가를 나와서 취득한 자격증이다

먹고 살기에 바쁜 시절이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조경기사 자격증이다

조경기사 자격증을 유일하게 사용한 것이 공사전환 기념식수다

인사기록카드에 등록된 자격증을 보고 기관장이 불러서 부탁한 일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정원수 중에서 배롱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정원수는 병과 해충이 없고 크게 자라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잎과 꽃과 줄기가 깨끗하고 보기 좋아야 한다

배롱나무는 병이 없어 잎이 깨끗하고 벌레가 먹지 않아서 지저분하지 않다

꽃은 7월 부터 시작해서 100일 이상 잔잔하게 핀다

줄기는 스스로 껍질을 벗어 항상 매끈하고 깨끗하다

정원수의 필요조건을 모두 갖춘 배롱나무다

특별히 전지를 하거나 농약을 사용할 필요도 없으니 관리도 쉽다

정원수 추전을 부탁하면 나는 배롱나무를 심어보라고 한다

요즈음 조경기사가 금값이다

자격증 취득도 어렵다고 한다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이 내 자격증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자기도 몇번 도전했다가 실기에서 실패했다고 한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지역마다 특색있는 공원사업이 활발하고 건설공사에서도 건물주변 조경공사 비중이 커져서 취업과 창업에 인기있는 자격증이라고 했다

은퇴를 하고 고용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서 구직활동을 할때 자격증을 보고 취업제의가 들어왔지만 내가 못 갔다

예전에는 조경기사가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토목공사 수준으로 업무영역이 확장되어 실무경험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취미 삼아서 조경에 관심을 가지고 능력을 키웠더라면 좋아하는 나무를 가꾸면서 노후에 업이 되었을 것인데 몹시 아쉽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보배도 장롱에 몇십년 묵혀 두면 돌멩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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