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건물주

재정이 할아버지 2017. 9. 4. 05:46

아랫층 세입자가 나를 피한다

두달째 월세를 못내서 미안해서 그런다

월세 독촉을 하지도 않는데 자격지심으로 그러니 나도 문밖으로 나서기가 조심스럽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시류에 무척  민감하다

지난해 겨울 촛불집회가 시작되면서 부터 아랫층 횟집에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회가 불안하면 직장인들이 회식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조그만 식당도 영업의 변수는 참 많다

계란파동이 오니 빵집이 힘들고, 조류독감이 퍼지면 닭고기가 안팔리고, 구제역이 창궐하면 고깃집이 텅빈다

월급으로 사는 직장인들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건도 자영업자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도 없다

매일 아침 가게 청소부터 시작하여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항상 쫒기듯 힘들게 산다

먹이사슬에서 건물주는 자영업자의 윗단계다

학교에서 설문한 미래 희망직업에 초등학생이 건물주라고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말이 빌미가 되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풍자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매달 내는 월세가 얼마나 버거웠으면 부모들이 하는 말을 듣고 어린아이가 미래에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했을까 웃프다 

건물주라고 해서 모두 부자이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담보대출이라도 받아서 산 건물이라면 대출금 이자상환으로 허리가 휘는 건물주도 많다

건물이 클수록 크고 작은 수선 유지비도 부담이다

세입자에게 월세독촉이라도 함부로 하면 갑질을 한다고 못된 소문이 돌아 동네에 나서지도 못한다

세입자가 힘들어 하면 친구들을 불러서 술이라도 팔아주어야 한다

텅빈 가게에 사람소리가 나게 하고 주눅든 세입자에게 술이라도 권하며 힘내라는 위로가 때로는 필요하다

나는 어쩌다가 건물주가 되었다

아파트를 사려고 부동산을 찾았다가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작은 물고기가 많은 저수지에 큰물고기가 산다

작은 물고기가 없으면 큰 물고기도 굶어 죽는다

자영업자들이 신이나게 일을 해야 세상에 화기가 도는데 신통치를 않다

생선횟집은 가을 전어철이 최성기다

여름 무더위에 숨었던 횟집손님들이 전어철이 되면 돌아온다

전어는 돌아 왔는데 오늘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힘든 세월이 끝나기는 또 틀렸다

대한민국은 禽獸江山(금수강산)이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웃집 원수  (0) 2017.09.06
마이너스 통장  (0) 2017.09.05
하필이면  (0) 2017.08.30
할머니의 저출산 대책  (0) 2017.08.29
구충제  (0) 2017.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