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하필이면

재정이 할아버지 2017. 8. 30. 06:14

고추농사는 끝났다

하얗게 꽃이 피고 탄저병에 걸리지도 않았지만 김장무와 배추를 심으려면 어쩔 수 없이 고춧대를 뽑아야 했다

주말농장의 좁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아픔이다

올 고추농사는 평년작이다

초반 첫물은 아주 좋았다

고추도 실하고 날씨가 좋아서 빨갛게 익는대로 잘 말렸다

중물 고추도 많이는 열렸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늦장마로 절반은 골아서 버렸다

옥상에서 말리는 태양초 고추라 방앗간에서도 귀하게 대접을 받는데 무척 아깝다

그래도 집에서 먹을 고추는 건졌으니 보람은 있다

일찍 걷은 고춧대에서 남아있는 풋고추를 따왔다

마누라가 가위를 들고 풋고추를 다듬는다

드문 드문 병난 자리가 있어 가위로 자르고 오리면서 양념으로 쓸 고추를 알뜰히 가려낸다

늘 하는 음식재료 다듬는 가위질이라 민첩하고 거침이 없다

가위로 고추를 다듬는 마누라를 보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희한한 뉴스 때문이다

여수에 사는 여자는 생활비도 안주고 구박만 한다는 이유로 잠자는 남편의 고추를 잘랐다

중국 사천성에서는 이혼한 여자가 전에 살던 남편집에 찾아가 자기 아들의 고추를 잘랐다

사건과 사고는 많지만 여자가 남자의 고추를 자른 경우는 황당하다

얼마나 사무치게 미웠으면 남자의 상징인 고추를 잘랐을지 세세한 사연이 궁금하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여자의 앙심이라고 생각하니 마누라도 갑자기 무서워진다

뫼비우스라는 영화의 스토리는 두사건을 합친것과 꼭 닮았다

바람피는 남편이 미워서 아내는 어린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가출을 한다

아픈 아들을  돌보던 남편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고추를 자른다

시간이 흐르고 가출했던 아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지금보다  더한 비극이 시작된다는 영화가 뫼비우스다

뫼비우스는 과학자 이름이다

재활용품 표시 로고로 사용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창안한 사람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겉과 속이 없고 안과 바깥의 구별이 없는 도형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 순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영화 뫼비우스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문제를 고추로 보는것 같다

왜 하필이면 고추를 잘랐을까?

우리나라 음식맛은 고추 넣는 방법과 양이 비결이다

가정도 고추로 부터 시작하고 잘쓰면 화평한데 잘못쓰면 풍비박산이다

고추가 없는 음식은 맛이 없고 고추가 없는 가정은 사막처럼 무미건조하다

가위질 잘하는 마누라가 무서운 이유다

요즈음 나를 바라보는 눈매가 예사롭지 않고 말투에도 가시가 박혔다  

별로 써먹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달고 다녀야 사내다

오늘밤 부터는 운동선수가 쓰는 낭심 보호대를 단단히 매자

방문도 꼭 잠그고 혼자 자야겠다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누라도 내 고추를 꼬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분노의 가위가 달려들면 나도 꼼짝없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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