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死必卽生

재정이 할아버지 2019. 8. 11. 17:00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마누라가 그 꼴이다. 뉴스에서 너도, 나도 나서서 내가 충무공이라고 설쳐대니 마누라도 내가 충무공이란다

 

충무공 사당인 현충사가 있는 염치읍에 집안 종산이 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현충사 앞을 걸어서 성묘를 다녔다. 중, 고등학생 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충무공을 정신적 지주로 숭배해서 현충사가 성역이었다. 봄 소풍은 충무공 탄신일에 맞추어 의무적으로 현충사행이었다. 교장 훈화와 역사 시간에도 충무공 교훈은 단골 메뉴였다. 난중일기를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숙제도 있었다

 

군대에 갔다. 신병티를 못 벗은 졸병 시절 중대장 교육 시간이었다. 중대장이 칠판에 死必卽生 生必卽死라고 휘갈겨 쓰고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모든 병사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 현충사가 고향인 나만 손을 들었다. 싸움에 임할 때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요행으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뜻으로 충무공 난중일기에 나오는 말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중대장은 그 자리에서 나를 행정병으로 명했다. 현충사 인근에 살아서 어른에게 듣고, 학교에서 배워서 충무공에 관한 문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 군대에서 충무공 덕에 꿀보직을 맡았고 수월한 군대 생활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한동안 충무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역사였다. 충무공과 현충사 뉴스도 별로 없었다. 간혹 후손이 현충사 재산 다툼을 한다는 거북한 이야기만 들렸다

 

근래에 외교적으로 티격태격하던 일본과 경제전쟁이 벌어지자 숨어있던 충무공이 벌떡 일어섰다. 일본과 싸움에서 충무공 이순신 이름은 핵폭탄급 무기임이 틀림없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충무공처럼 위기의 나라를 구하고 헌신한 위인도 없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면 마누라는 모기와 전쟁을 한다. 단독 주택의 불편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름에 모기와의 전쟁도 그중 하나다. 방충망을 하고 수챗구멍을 빈틈없이 막아도 소용없다. 어디로 들어오는지 하루에 몇 마리씩 모기가 들어와 마누라를 힘들고 짜증나게 한다. 모기가 마누라만 쫓아다니며 물기 때문이다

 

모기와 싸우느라 밤잠을 설친 마누라는 낮잠을 잔다. 낮잠을 잔 마누라는 초저녁잠이 없다. 선선한 저녁에 TV도 보고 책도 읽고 밤낮의 생활이 바뀐의 여름을 보낸다. 직장에 나가고 낮잠을 자지 않는 나는 초저녁이면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나보면 마누라는 이슥한 시간에도 거실에 앉아 TV를 보거나 책을 읽고 있다. 달려드는 모기를 잡으려고 항상 전자 모기채를 옆에 들고 있다. 모기와의 싸움에서 死必卽生의 각오를 충무공의 한산도가를 개작해서 적어 놓기도 했다.

 

열대야 깊은 밤에 거실에 혼자 앉아

모기채 옆에 차고 서방님을 지킬 적에

어디선가 모깃소리 나의 애를 끊나니

 

초등학교 다닐 때 외운 한산도가를 지금의 처지에서 그렇게 개작을 한것이다. 모기 잡는 전자 모기채를 들고서 칼을 차고 나라를 지킨 충무공과 동일시 한 것이다. 나는 모기에 물려도 좋으나 내 가족만은 모기에 물리지 않게 한다는 살신성인이 충무공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왜구가 코와 귀를 전리품으로 잘라갔듯 아침이면 밤에 잡은 모기를 화장지에 염을 해서 내게 보여주는 것도 똑같다

 

장수가 백성을 지키고 가장이 가족을 지키는 본분은 다를 수 없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충무공을 참칭하는 것은 문제다. 중대장 교육 시간에 死必卽生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충무공은 아니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예수도 아니다. 염불을 잘한다고 석가모니가 될 수 없다. 충무공도, 예수도, 석가모니도 말과 글을 잘해서 성인이 아니고 가르침이 될 일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마누라처럼 몸을 미끼로 희생해서 모기라도 잡아 가족을 지킨 사람만 충무공을 입에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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