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황당한 병원 생활

재정이 할아버지 2020. 11. 23. 16:00

11월 17일은 내가 폐암을 수술하는 날이다

마누라는 며칠 전부터 여행 가는 사람처럼 여행가방을 꾸렸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며 들고 다니던 캐리어도 낡아서 새로 샀다

코비드 19가 종식된다 한들 이제는 해외여행 가기는 글렀다

그러면서도 해외여행 갈 때나 쓸법한 고급 캐리어를 산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여행지는 병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편하고 산뜻하고 좋은 물건만 좋은 가방에 담아서 병원에 가자는 뜻이 숨어있다

 

입원 예약시간은 오후 3시다

시내버스를 타고,  SRT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어도 시간 여유 있게 병원에 도착했다

서울 상급병원은 입원하는 날 아침에 전화 문자로 예약된 병실을 알려줘서 바로 병실로 가면 된다

코로나 때문에 문병이 금지되고 보호자도 1명만 허용되다 보니 병실은 숨소리만 들리지 적막하기까지 하다

암 병동이라 모두 암수술 환자들이고 길어야 1주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을 하니 간병인도 없다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창가를 바라보니 잠실이 보이고 그 뒤에 롯데타워가 위용을 자랑한다

롯데타워는 처음 보는 건물이다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는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의 강남구가 눈 아래 펼쳐져있다

세상의 모든 돈과 부자는 서울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대전에서는 괜찮은 동네 주택에 살고 있지만 우리 집은 서울 아파트 현관 문짝 값도 안된다

아파트와 부동산 문제가 세상의 화두라 서울 풍경은 아파트만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내일 수술을 진행할 스태프들이 과정을 설명하러 차례로 온다

오후 5시, 흉강경 수술로 갈비뼈 사이에 세 개의 구멍을 뚫고 3시간 진행한다

전신 마취를 하고 결절 부위는 쐐기형으로 절제하여 폐손상을 최소화한다

현장에서 조직검사를 하여 이상소견이 나오면 오른쪽 폐의 림프절도 모두 적출한다

수술이 끝나면 바로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은 걷기와 불어서 구슬 굴리기, 기침으로 가래 뱉기다

검사를 하러 올 때마다 들었던 말이지만 다시 반복하고 확인하고 다짐까지 받는다

단계마다 장점과 단점, 부작용에 대한 설명과 설명을 들었음을 확인하는 싸인이 있어야 끝이 난다

수술은 위험하고 변수가 많아서 의사도 환자도 부담이 큰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수술 당일은 전일 금식이다

새벽에 깨워서 바로 수술하면 좋으련만 대부분 오후 늦은 시간에 일정이 잡힌다

침대에 누워서 나를 데리러 오기만 기다리는 시간은 설명하기 힘든 긴장과 초조함의 연속이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가고 때가 되면 이름이 불리고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간다

수술실은 멀리서 입구만 보여도 소름이 돋는다

싸늘한 공기에 주눅이 들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한다

스태프들이 부르면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뭄을 움직이다 보면 얼굴에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나의 시간은 거기서 정지된다

 

갑자기 환한 빛이 보이고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면 수술이 끝났다는 신호다

마누라가 옆에서 뭐라고 하기는 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마취가 풀리면서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수면 주사를 맞고 나의 시간은 또 멈췄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옆에는 낯선 사람들뿐이다

간호사가 중환자실이라고 알려주었다

아픈 곳이 있느냐고 물어서 허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었다

진통제와 함께 항생제도 함께 주사한다고 알려주었다

수술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진통제와 항생제 주사였다

중환자실에는 어제 수술한 환자들이 하나 둘 깨어나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내용은 수술 환자 회복실이라는 표현이 맞다

 

수술 후 첫 식사는 죽이 나왔다

수술 전 하루를 금식한 탓에 맛도 모른 채 죽을 다 먹었다

죽을 먹고 나니 약을 가져왔다

폐암을 수술한 환자의 약은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가져온 약은 집에서 평시에 매일 먹던 약이었다

열을 내려주는 해열제도, 곪지 않게 해주는 항생제도 없다

변비 예방약과 진해거담제가 수술과 관련된 약이었다

 

식사 후 운동을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통 전체가 뻐근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간호사 손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걸었다

주치의는 수술 후 빨리, 많이 걷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폐를 잘라냈는데 계속 누워만 있으면 폐가 오그라들기 때문에 오그라들기 전에 서서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걷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걷기가 끝나면 불어서 구슬 굴리기를 한다

수술 전 연습에서는 호흡량 2500 ml를 했는데 수술 후에는 500ml도 버겁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기구를 입으로 불어서 구슬을 밀어 올리는 운동인데 폐활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이 운동 역시 늦거나 게을리하면 폐가 오그라들 염려가 있어 폐암 수술 환자 필수 회복운동이다

구슬 운동 중간중간에는 기침을 크게 하고 가래를 뱉는 운동을 한다

폐를 잘라냈기 때문에 상처 난 폐에 고인 피고름을 뱉어내지 않으면 폐렴이 발생하여 빠른 시간에 가래를 뱉어내야 한다

수술 직후지만 걷기는 무리가 없었다

구슬 굴리기와 가래 뱉기는 가슴이 너무 아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보호자 면회가 있다고 했다

보호자 면회와 주치의 회진이 끝나면 일반실로 이동한다

병원에 오기 전 마누리가 캐리어에 관심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서울 상급병원은 입원해서 수술 전 하루를 일반실에서 지내고 환자가 수술실로 내려가면 보호자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가든지 중환자실 주변 휴게실에서 노숙을 한다

환자가 중환자실에 나와 일반실로 가면 보호자도 함께 일반실로 가게 된다

병원 규칙이 이러하니 환자 보호자는 몇 번이고 캐리어를 싸고 풀면서 환자를 따라다녀야 한다

주치의는 나의 수술 결과가 기대 이상 좋다고 했다

작은 결절은 암이 맞아 깨끗이 적출했고 옆에 있던 물혹과 림프절도 성공적으로 적출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수술이라는 큰 이벤트를 마치고 일반병실로 돌아가는 환자는 개선장군의 자세이고 세상 모두가 내 것 같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강남의 아파트도 안 부럽고 롯데타워도 가소롭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항상 나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걷기 운동과 구슬 불기, 기침만 잘하면 된다

걷기는 문제가 없는데 구슬 불기와 기침은 여전히 어려워 내심으로는 거의 포기상태였다

 

일반병실로 올라오자 으슬으슬 추웠다

간호사를 호출해서 몇 번이나 열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38도가 안 넘으니 기다려 보자는 말만 한다

코로나 19는 입원 전 타 병원에서 음성으로 나왔으니 걱정을 안 하는데 감기라도 걸릴까 봐 해열제라도 달라는데 끝내 안 주었다

수술 환자인 나에게 아직도 집에서 먹던 약 이외에 주는 약이 없다

수술 부위도 보여달라고 해서 말없이 보고 가기만 할 뿐 소독약 한번 발라주지 않는다

해열제 때문에 간호사와 가벼운 언쟁까지 있었는데 투약과 소독은 처방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처방이 없으니 간호사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은 그날 밤 일어났다

일반실로 오면서 부터 열이 났고, 투약과 수술 환자 관리 문제로 간호사들과 서먹한 상태에서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간호사가 찾아와 자고 있는 나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갔다

마누라도 몇 번 불려 나갔다

간호사가 수시로 내 체온을 쟀다

새벽 2시

나를 격리 병실로 옮긴다고 했다

나를 수술한 팀원 중 한 명이 나를 수술한 직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열이 난다고 호소한 환자이니 더욱 각별히 나를 다루는 듯했다

입원환자가 아닌 접촉자는 자가격리, 입원환자는 음압 병동 격리가 결정된 모양이다

 

자다 말고 휠체어를 타고 나가니 복도에는 보안 요원들이 파란 방호복을 입고 도열해 있다

고관 행차처럼 내가 나타나면 보안요원들이 방향을 수신호로 알려주고 무전기로 연락하느라 난리다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길을 지나자 음압병동이 나타났다

일단 들어가면 자력으로는 나올 수 없고 밖에서 열어 주어야 나올 수 있는 감염병 전문 병실이다

간호사가 올 때도 대기실에서 두꺼운 방호복으로 갈아 입고 내게 물건을 전달해 주고 대기실로 나가서 방호복을 벋고  간다

한번 사용한 물건은 모두 밀폐된 통에 담아 치운다

사용한 흔적 없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병실은 쾌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잘 만든 음압병실일 것이다

나를 데리고 온 보안요원들은 말이 없다

나를 데려다 가두어 놓고 말없이 나가 버렸다

오는 도중 몇 가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짧게 모른다 였다

폐암 수술로 입원을 했다가 황당하게도 코로나 19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

나는 수술한 지 하루 밖에 안된 암환자인데 치료는 누가 해주지?

 

음압 병동에서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TV 때문이다

일반병실에는 없는 TV가 있었기에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음압 병동 격리에 들어가자 병실에서 쫓겨난 마누라도 새벽 첫차를 타고 대전 집으로 내려갔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실이 엉키고 꼬인 병원생활이다

수술까지는 잘해놓고 투약이나 소독 등 사후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보호자가 환자를 지키려다 노숙을 하기도 하고 집으로 쫓겨 가기도 한다

하루에 서너 번 도시락을 나르고 문진을 오는 간호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일한 기쁜 시간이다

화도 나고, 할 일도 없고 간호사가 올 때마다 안 한다고 다그쳐서 구슬 불기를 시작했더니 호흡량이 많이 늘었다

호흡량이 늘어나니 저절로 기침이 터져 피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되어 있었지만 담당 간호사는 계속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깨끗해도 고립된 공간은 지옥이다

 

음압병실에서 이틀째

간호사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집에 내려갈 것이냐고 물었다

SRT를 타고 간다고 했더니 코로나 자가격리자라 대중교통 이용은 안된다고 했다

가족이 운전하거나 코로나 환자 이송 전문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거주지 유성구청에 이미 의뢰가 되었으니 유성구청의 지시를 따르란다

유성구청의 지시를 따르되 비용은 본인 부담이라고 했다

미친다

가지가지로 꼬이고 비틀린 나의 병원생활이다

음압병실 격리 까지는 참을만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집에 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지만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다

이 병원을 계속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의 입장에서 병실에 누워 몽니를 부릴 수도 없으니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화가 날 때마다 구슬을 불고, 기침만  해댔다

 

퇴원하는 날

나는 아침부터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11시로 알려 주어서 환자 이송 택시가 11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10시가 넘어도 나의 퇴원수속은 함흥차사였다

택시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내야 할 돈 20만 원에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할 텐데 아무도 나의 퇴원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담당 간호사가 10시가 넘어서 약봉지를 한 바구니 들고 왔다

여전히 내가 집에서 먹던 약이다

수술과 관련한 치료 약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변을 못 봤다고 했더니 변비약만 서너 가지 추가되었다

간호사가 수술 부위 소독을 하자고 해서 상의 벗었다

등 쪽의 환부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지만 간호사가 거즈를 떼어 내더니 봉합실이 엉켜서 정리를 해야 한다며 기다리라고 하고 나갔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울화가 폭발하여 씩씩거리고 있는데 마누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누라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주치의가 들어왔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어찌 되었건 폐암이라는 무서운 병에서 나를 구해줄 유일한 사람이니 참아야 한다

간호사, 마누라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최대한 인내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그리고 물어보자 환자관리를 이렇게 큰 병원에서 이따위로 하느냐고......

 

주치의는 웃으며 사실상 폐암 완치를 선언했다

건강 회복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수술을 하면서 추가로 적출한 물혹과 림프절에서는 암세포가 없다고 했다

 1기 암세포는 깨끗이 떼어냈고 앞으로는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만 할 것이라고 했다

고통스럽고 돈이 많이 드는 항암치료는 안 한다고 했다

 

항생제 투약이나 수술부위 소독은 왜 안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자신의 수술방법은 절개를 최소화고 시간을 단축시켜서 수술 당시 항생제 투여로 부작용 억제가 충분하고 수술 부위는 접착제로 마감 처리를 하기 때문에 소독이 필요 없는 치료방법이라고 했다

간호사가 정리하다만 상처는 어쩔 거냐고 하니까 주치의가 직접 정리를 해주었다

병원의 돌발적 상황으로 나와 같은 수술 환자가 모두 격리되어 간호사들이 바쁘고 정신이 없다고 했다

 

내가 수술한 날 같이 일하는 마취과 의사가 코로나 19에 확진되어 자신부터 팀원 전체가 격리되었다고 한다

코로나 자가격리로 회진을 하지 못해 환자와 소통해야 할 정보가 차단되고  많은 환자들의  불만이 쌓였다고 미안해하였다

듣고 보니 나나 주치의나 처지는 같다

화만 낼 일도 아니다

만나지 못해서 오해가 생긴것 뿐이다

 

주치의가 돌아가고 얼마 있다가 간호사로 부터 퇴원하라는 인터폰 연락이 왔다

문을 열어 줘야 나가지 않느냐고 했더니 또 기다리라고 한다

10분쯤 지나서 보안요원이 왔고 나는 3일 만에 음압병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화를 내는 일도 지쳤다

코로나 자가격리가 이제 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 년 고개  (0) 2020.12.01
미래는 모른 채로  (0) 2020.11.23
黎明의 시간에  (0) 20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