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삼 년 고개

재정이 할아버지 2020. 12. 1. 11:37

내가 좋아하는 12월이 시작되었다

1년은 열두 개의 달로 나뉘어 있지만 같은 달이라도 맞고 보내는 감정이 같지는 않다

기다려지는 달이 있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달도 있다

내가 기다리는 12월은 생일이 들어있고 인류의 명절 크리스마스도 있다

달력을 바꾸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고, 살아온 여정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괜스레 설레는 12월이다

 

올 12월은 더욱 각별하다

폐암 수술을 받으면서 코로나 19 확진 의사와 접촉되어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가 12월 1일 해제되었다

되돌아보면 아주 위험한 고비를 한 번에 두 개나 넘은 셈이다

폐암 자체로도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코로나 19의 폐렴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천운이다

코로나 19 창궐기의 폐암 치료 과정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병원 자체가 코로나 19 취약지역이라 전화로 문진을 하고, 입구에서도 서면 문진을 통과해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발열체크를 하고, 가는 곳 마다 제일 먼저 손 소독부터 한다

열이 나는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 평소에도 외출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나를 수술한 의사는 수술이 끝난 후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데 확진자 접촉이 병원 밖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수술 자체가 어려웠다

폐암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그 싸움의 수순이 절묘했다

의사도 나도 밀접 접촉자이었음에도 기능성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코로나 19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니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 19 확진자 접촉은 구청에서 역학조사를 근거로 문자와 서면으로 알려온다

자가 격리자로 지정되면 2주간 구청에서 허락한 장소에서만 지내야 하고 세세한 생활까지도 지시에 따라야 한다

병원에서 대전까지 나를 데려간 택시도 구청에 보내준 감염병 환자 이송 전문 택시였다

주로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공항에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경우가 많은데 수술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고 했다

수술한 지 사흘 만에 퇴원을 하고 제 발로 걸어서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보고 기사가 깜짝 놀란다

의료기술 발전은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주변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누라도 내가 자가 격리자가 되면서 나의 접촉자로 같이 자가격리자가 되어 격리 중이었다

구청에서 불이 나게 전화질을 하고, 생활용품들이 도착하고, 수술 환자가 왔어도 아프지 않으냐고 물어볼 시간도 없이 바쁘다

 

자가격리는 쉬운 방역활동이 아니다

구청에서는 우리 집이 2, 3층 복층 집이라는 말에 자가격리를 허락했다

나는 3층, 마누라는 2층에서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3층에는 컴퓨터와 TV가 없다

컴퓨터와 TV도 없이 2주간 혼자서 천정만 바라보고 산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급히 계획을 변경해서 마누라는 2층에서 살던 대로 살고, 나는 컴퓨가 있는 2층 서재에서 살기로 했다

화장실 갈 때만 방을 나오고 일체 문 밖은 나가지 않기로 했다

밥도 서재에서 혼자 먹었다

 

수술 환자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은 지극정성 간호를 받는다는데 나는 천덕꾸러기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컴퓨터만 있으면 몇 날 며칠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재주가 나에게는 있어서 열흘이 넘는 자가격리 기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컴퓨터로 실시간 지상파 방송을 모두 볼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만 있으니 혈당 수치가 올라가 혈당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구청에서 현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쓰레기도 버리지 말라고 해서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쓰레기봉투,  쌀,  생수, 통조림 반찬 등을 보내줘서 그럭저럭 지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이제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암과의 싸움,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처음 암병동을 찾아갈 때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암병동에는 이상한 의사, 이상한 환자만 있는 줄 알았다

암이라는 말속에 내재된 공포감에서 벗어나야 치료의 길이 열린다   

 

암병동에도 따듯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국에서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비슷한 병으로 모인 곳이다

처음 암병동을 찾은 사람은 잔뜩 겁먹은 굳은 얼굴이고,  수술을 하고 추적관리를 받는 환자들은 여유 있는 얼굴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대학교수 출신 환자는 암에 대한 선입감이 무서운 것이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생기는 생리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조언해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삼 년 고개"라는 전래동화가 있었다

지나다가 넘어지면 3년 밖에 못 산다는 공포의 고개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 아무리 조심을 해도 가끔 그 고개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나온다

삼 년 고개에서 넘어졌으니 이제는 3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에 지레 몸져누워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겪어보니 암 진단을 받는 순간은 삼년 고개에서 넘어지는 사람의 심정이었다

암에 대한 선입감이 그것이다

 

삼 년 고개에서 넘어져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명석한 손자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삼 년 고개에서 넘어져 아프다는 말을 듣자 손자는 한 번 더 넘어지면 6년, 또 한번 넘어지면 9년을 산다고 알려준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삼 년 고개에서 하루 종일 굴렀더니 삼천갑자를 살았다고 한다

삼 년 고개의 비극에서 발상을 전환하니 장수 고개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삼년 고개에서 이제 겨우 한번 넘어졌다

이제부터는 병원에 올 때마다 한 번씩 넘어지자

멋지게 굴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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